지난해 1월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된 중대재해법이 내년부터 5인 이상 49인 이하 소기업으로 확대 적용된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영세업체 대다수가 법안을 수용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 89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80.0%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아무 준비도 못 했다’는 답변도 29.7%에 달했다.
중대재해법이 발효된 지 한참인데 소규모 작업장의 준비가 아직도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기업들은 ‘전문인력 부족’(35.4%)과 ‘예산 부족’(27.4%), ‘의무 이해가 어렵다’(22.8%)는 이유를 들었다.
작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방지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토를 달 이는 아무도 없다. 사고를 내고 싶어 하는 기업도 없다. 다만 법안이 지향하는 당연하고도 정의로운 목표를 수행하기에 현장의 기반이 터무니없이 허약하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중기 현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건설 현장에서 동바리 가설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의 B대표는 “영세업체는 사업주가 영업부터 기술 개발, 자금 융통까지 일인다역을 맡는다”며 “안전관리자를 모셔올 비용도 없고, 안전관리자도 영세업체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중소기업계에선 현실을 고려한 법 적용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세업체에 한해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기업의 절대다수(85.9%)는 중대재해법 유예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좋은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영세기업을 대기업, 중견기업과 같은 잣대로 다루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9월 정기국회를 비롯해 무차별적인 중대재해법 적용을 피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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