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방폐장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인류가 원자력발전소를 이용한 지 70년이 지나면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원전 내 습식 저장시설(수조)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2028년부터 일부 원전의 저장시설이 꽉 찰 전망이다. 하지만 주요 원전 운영국과 달리 방폐장 건설 작업은 첫발조차 떼지 못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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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폐장 건설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이다. 5개 원전을 운영 중인 핀란드는 이미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5년부터 세계 최초로 가동에 들어갈 전망이다. 핀란드는 원전 의존도가 40%에 달한다. 핀란드는 원전 계속운영을 위해선 방폐장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오랜 기간에 걸쳐 방폐장 건설 작업을 해왔다. 1983년 의회가 결정한 ‘방폐물에 관한 원칙 및 관리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2001년 방폐장 부지를 확정했고 2016년 방폐장 공사를 시작했다. 스웨덴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작년 1월 외스트함마르에 방폐장을 짓는 방안에 대해 정부 승인을 받았고 곧 착공할 예정이다.
미국은 한국과 비슷하게 의견 수렴 부족으로 방폐장 건설이 40년 가까이 난항을 겪었다. 2002년 방폐장 부지로 네바다주 유카산을 지정했으나 주민 반대로 건설이 무산됐다. 그러나 지난 6월 미국 정부가 전국 단위의 신규 방폐장 입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방폐장 건설 작업에 다시 탄력이 붙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입지 조사에만 2600만달러(약 345억원)의 지원금을 지출할 계획이다.
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내년 총선 후 구성되는 차기 국회에서 다시 처음부터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야 간 의견 차이가 큰 만큼 새로 입법을 추진할 경우 지금보다 더 법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작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열 차례 법안소위 심의를 거쳤다.
문제는 특별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내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리원전(고리2~4호기, 신고리1·2호기)은 2028년, 한빛원전(한빛1~6호기)은 2030년, 한울원전(한울1~6호기, 신한울1호기)은 2031년, 월성원전(월성2~4호기)은 2037년이면 임시저장시설이 꽉 찬다. 별도 시설 투자를 통해 기한을 늘릴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방폐장을 짓는 데는 30년 넘게 걸린다. 지금 특별법이 통과돼 내년부터 부지 선정 절차에 들어가도 일러야 2060년에 방폐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 법안을 통과시켜도 방폐장을 짓기까진 수십 년이 걸린다”며 “원전을 통해 값싼 전기를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지금 방폐장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사용후 핵연료 등 방사능 농도가 높은 폐기물이다. 이에 비해 원전에서 사용된 작업복, 신발 등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방사능 농도가 낮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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