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만 해도 80%에 육박하던 서울 빌라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최근 60%대로 떨어졌다. 통상 이 비율이 낮아지면 전세보증금을 떼일 ‘깡통전세’ 리스크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세사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가시지 않으면서 빌라 임대차 시장에선 여전히 전세 기피 현상이 적지 않다.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면서 서울 빌라 월세는 8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7일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3개월간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기준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세가율은 69.5%로 집계됐다. 전세가율이 10% 미만이거나 200% 이상인 특수 사례를 제외하고 계산한 값이다. 1월(78.0%)과 비교하면 반년 새 8.5%포인트 떨어졌다. 서대문구(83.5%)와 강서구(76.9%), 영등포구(76.4%), 강북구(76.0%) 등은 전세가율이 여전히 높지만 올 들어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빌라 전세 포비아(공포)’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수요가 줄면서 전셋값도 내려가고 있어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4만981건으로, 전년 동기(5만6223건)보다 27.1% 감소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보증금이 6억원 넘는 전세 계약이 확 줄었다”며 “고가 전세 거래가 감소하면서 전세가율이 더 낮아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전세가율이 올라갈수록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도 커진다. 서울 빌라 전세가율이 최근 하락세를 띠지만 수요자 불안이 해소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5월 일찌감치 반등에 성공한 서울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가격이 여전히 내려가고 있는 데다 ‘거래 가뭄’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집을 판 돈으로 보증금을 보전받기 쉽지 않다는 심리가 팽배한 셈이다. 5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1~7월 기준 서울 빌라 전·월세 계약 중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2.1%에서 올해 53.2%로 감소했다. 월세 선호 현상이 나타나는 건 오피스텔도 마찬가지다.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아파트만 전세가 강세를 띠고 있다.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 관계자는 “빌라를 보러 오는 고객의 상당수가 보증금 규모를 가급적 낮추려 한다”며 “기존 빌라 전세 세입자 중에는 이참에 경기도나 서울 외곽 아파트 구매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빌라 수요자의 주거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전용면적 33㎡ 이하, 보증금 1000만원 기준)의 평균 월세는 59만9000원으로, 1년 전(57만9000원)에 비해 3.5% 상승했다. 연세대(52만6000원→79만원), 경희대(52만5000원→62만원), 고려대(48만5000원→55만원) 인근 지역 오름폭이 높았다. 장준혁 다방 마케팅실장은 “개강 시즌을 맞아 집을 찾는 학생과 인근 주민의 주거비 부담은 2학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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