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는데도 이를 억지로 봉합시키려던 관리자가 법원에서 '괴롭힘 가해자'로 판단돼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됐다. 관리자가 직장 내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되레 감정적 대응에 나섰다가 상황을 악화시킨 '최악의 케이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전주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일하다 2020년 사망한 근로자 A씨의 유족이 A씨의 상급자 B씨와 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A씨의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직속 상사인 B는 회식 자리에 둘을 불러 서로 포옹을 하고 화해하라고 요구했다. A는 어쩔 수 없이 화해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수치스럽고 최악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A는 사직의 뜻을 밝혔지만, 다른 상급자가 A를 만류하고 업무 분장을 새로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이번엔 C가 자신이 휴직하겠다며 새 업무분장에 대해 반발했다. 하지만 B가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 C는 실제로 휴직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B는 A를 보안실로 불러 "너희 둘 때문에 업무에 피해가 간다. 화해할 생각 없냐" "C가 너 때문에 그만두면 네 평판이 좋을것 같냐"고 압박했다. 이에 A는 "내가 그만 두면 되지 않냐"며 울면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 직후 B는 되레 C를 불러 "너는 모른 척하고 버텨라"고 말했다.
이후 극심한 감정 기복을 빚던 A는 노조 간부에게 카톡을 보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겠다"며 억울함을 표시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는 A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면 나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A가 실제로 신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B는 문자를 통해 A에게 고소장 사진을 보내며 "법정에서 가려보자"며 문자를 보냈다. 이후 이뤄진 A와의 통화에서도 "너로 인해 씻을 수 없는 명예훼손을 당했다. 명예훼손 맞고소 들어가고 절대 합의해주지 않고 민사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A를 몰아 세웠다.
B의 압박에 A는 사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통화 4일 후인 2020년 1월 7일 A는 화장실에서 목을 맨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고 결국 같은달 24일 사망했다. A가 남긴 쪽지에는 B등에 대한 원망이 적혀 있었다.
유족들은 "B는 자신과 절친한 C의 편을 들어 일방적으로 부서 내 불화와 업무상 책임을 떠넘겼다"며 "이를 신고하려 하자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몰아세우고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는 "갈등을 중재하려 화해를 권유했을 뿐"이라며 "괴롭힘이라고 해도 자살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급자인 B는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잘잘못을 가리지 않은 상태에서 회식을 개최하고 서로 포옹을 하게 하는 등으로 자신의 부서의 갈등이 더 이상 표출되지 않게 무마하려고 했다"며 "갈등이 심각함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A의 책임도 있다는 취지로 말하고, C가 휴직을 하는 경우 평판에 좋을 것 같냐는 등으로 추궁해, A는 이를 편파적으로 느끼고 억울함과 고립감, 무기력감을 느끼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A가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울며 뛰쳐나갔지만 상급자로서 A가 억울해 하는 심정을 이해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는지 여부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A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하고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A의 사과에 대해서도 "A는 B의 형사고소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B와의 갈등으로 인해 직장에서의 평판이 더욱 나빠질 것을 두려워해 사과까지 하게 된 것이며 이때문에 상당한 굴욕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법원은 "B와 공단은 공동으로 A의 유족들에게 총 1억3000만원 가량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C는 공단 내부 조사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되레 제3자였던 B가 가해자로 판명이 나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단순 갈등 사안이, 관리자가 직원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으면서 상황을 악화시킨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 결과 회사도 책임을 지게 됐다. 법원은 "부당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워한 A가 자살을 할 때까지 피고 공단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공단은 근로계약상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결국 사내 갈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늦어질 수록 회사의 손해는 커질 수 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 사례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인지된 경우, 개인적 지위를 이용해서 해결하려 하거나 부서 차원에서 봉합하려다가는 일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며 "사소한 갈등이라도 공론화된 경우라면 회사 차원에서 지체 없이직장 내 괴롭힘 해당 여부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절차를 거치는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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