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A씨의 유족이 B 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 측에서 A씨의 사망 원인이 진료상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이라는 점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A씨는 2015년 12월 29일 어깨 수술을 받기 위해 B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소속 마취과 전문의인 C씨는 다음날 오전 10시15분께 전신마취와 부분마취를 진행하고 10시42분쯤 간호사에게 상태를 지켜보라고 지시한 뒤 수술실을 나왔다. 수술은 11시경부터 시작됐는데, 수술 중 A씨에게 저혈압과 산소포화도 하강 증세가 나타났다.
간호사는 A씨의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C씨에게 네 차례 전화했다. 최초 전화에서 C씨는 혈압상승제 투여를 지시했고 두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이후 두 차례 통화를 거쳐 수술실로 돌아온 C씨는 A씨에게 혈압상승제 등을 투여했지만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고 이에 심폐소생술을 했다. 이후 A씨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도착 직후 끝내 사망했다. A씨의 유족은 "C씨가 제때 조처를 하지 않아 A씨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2019년 7월 B 재단을 상대로 1억6000만원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C씨의 과실과 A씨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2심 재판부는 "C씨에게 응급상황에서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못한 진료상 과실이 있고, 만약 C씨가 간호사 호출에 대응해 신속히 혈압회복 등을 위한 조치를 했더라면 저혈압 등에서 회복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진료상 과실이 환자 측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환자 측이 증명한 경우 그 인과관계를 추정해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손해 발생의 개연성은 자연과학적,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다"며 "다만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막연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는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또 "의료행위를 한 측에서는 진료상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B 재단이 A씨 사망 원인이 진료상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반면 같은 사건의 형사 상고심에선 C씨에 대한 무죄 취지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는 업무상과실치사 및 의료법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금고 8개월과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 중 업무상과실치사 부분을 파기환송하면서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의료과오 민사소송에서 진료상 과실이 증명된 경우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법리를 정비해 새롭게 제시한 판결"이라며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기준이고,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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