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질의 방해에 한동훈은? “무슨 야구장 오셨습니까?”’ 최근 유튜브에 올라와 13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의 섬네일 제목이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가 대부분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있지만 생업에 바쁜 사람들은 편집된 짧은 영상을 통해 정치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알고리즘이 슬슬 작동하고, ‘내 성향’에 맞는 섬네일이 더 자주 뜬다. 지지자들이 속 시원함을 느끼는 사이 영상의 주인공은 상대 진영을 제압하는 전사(戰士)로 각인된다.
대통령은 전사가 되라는데
정치권과 관가에 ‘전사형 장관’이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 때문이다. “여러분은 정무적 정치인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다. ‘전사’가 돼야 한다.”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야당 의원들과 거친 설전을 벌이고, 물러서지 않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본받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어떤 말투와 태도를 보여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니 말이다. 윤 대통령 ‘지시’ 이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발언 톤이 세졌고, 점잖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덕수 총리까지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주 3개 부처 장관이 새로 지명됐다. 신원식(국방부), 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김행(여성가족부) 후보자다. 감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 일각과 지지층에서도 참신성 부족과 인력 풀의 한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전사형 색채가 짙은 인물이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야권은 기다렸다는 듯 후보자들의 일부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격돌이 예상된다.
새로 지명된 후보자들이 임명장을 받게 되면 성과로 유능함을 입증하고, 정부 정책의 효능감을 국민에게 주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지낸 신 후보자는 국방정책 기획·전략통으로 평가받는다. 안보환경이 엄중한 상황에서 그가 강조한 대로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유 후보자는 문화예술 현장과 행정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갖췄다. 내수에 기여할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만 마련해도 성공한 장관으로 남을 것이다. K컬처의 전 세계적 확산에 주목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공연을 결합한 ‘K팝 위크’ 신설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면 좋겠다. 김 후보자는 여가부가 존속하는 한 고유 업무에 충실하도록 조직 분위기를 다잡는 게 급선무다. 부처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기능과 역할까지 끝나는 것은 아닌 만큼 ‘부처 레임덕’을 막아야 한다.
유능함·결기 함께 보여줘야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야당의 억지성 공세가 일상화한 상황에서 장관들의 결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여론이 오도되고 정부 신뢰가 손상된다. 그렇다고 전사형 장관이 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국무위원이 한동훈, 원희룡 장관처럼 될 필요가 있을까. 윤 대통령 발언도 야당과 무조건 싸우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논리와 전문성으로 대처하는 장관이 오히려 정부 신뢰를 더 높일 수 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격 있게 행동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미셸 오바마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를 겨냥해 외쳤던 구호의 의미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