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1일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스마트폰 부품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갑질’로 삼성전자를 압박해 자사에 유리한 장기계약(LTA)을 체결했다고 판단, 19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191억원의 과징금을 두고 "너무 적은 게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전자가 입은 피해만 최소 1억6000만달러(2140억원)에 달하는 데다 브로드컴이 자진시정안(동의의결안)으로 제시했던 반도체 상생기금 200억원보다 적은 숫자라면서요.
하지만 적용된 법과 주변 경쟁당국의 동향을 살펴보면 꼭 '솜방망이 처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왜 브로드컴에 부과된 과징금이 191억원이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브로드컴에 거래상 지위 남용 법을 적용하게 되면 공정위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관련 매출에 부과율을 최대 2%를 적용해 과징금을 매길 수 있었습니다. 2021년 11월 법 개정으로 현재는 상한을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브로드컴이 갑질을 벌였던 2020년 2월부터 2021년 8월의 기간은 해당 법을 적용할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으로부터 구매한 부품 8억달러를 모두 불공정매출로 보고 과징금 상한 2%를 적용해 191억원을 부과했는데요, 보통 부과율 상한선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선 셈입니다.
하지만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을 적용할 땐 갑질 행위 당사자가 얼마나 시장 지배력이 높은가 만을 따지지 않습니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회사가 직접 지배력이 낮은 회사를 공격하거나, 시장 지배력이 높은 회사가 불공정한 행위로 인해 시장의 봉쇄효과(경쟁 제한)를 높인 정황이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사례론 국내 게임사의 원스토어 입점을 막았던 구글의 사례가 있습니다. 구글은 2016년 6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플레이스토어 1면 노출(피처링), 해외진출 지원 등을 독점 출시 조건으로 제공하면서 국내 게임사들이 경쟁 앱마켓인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지난 7월 과징금 421억원을 부과받았죠.
브로드컴 사건의 경우엔 시장의 봉쇄효과(경쟁 제한)를 높인 정황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다만 피해자인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20% 남짓이었습니다. 나머지 80%는 애플이었고요. 즉 브로드컴이 시장점유율 20%인 사업자를 공격한다 해서 애플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죠. 실제 삼성전자가 브로드컴과 LTA를 체결했다 해서 브로드컴이 애플에 공급한 부품의 가격이 더 올랐다든지의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 브로드컴과 삼성전자의 건은 유럽연합(EU)에서도 서면자료 제출을 요구한 바가 있는데요, EU에선 그럼에도 이 사건을 과징금 부과나 시정명령 없이 종결시켰습니다. EU의 법으론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밖에 제재할 수 없고, 거래상 지위 남용을 제재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즉 EU 역시 이 사건을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볼 수 없었단 얘기죠. 참고로 거래상 지위 남용 법이 있는건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합니다.
다만 3심 중 1심에 해당하는 공정위의 판단이 '브로드컴의 위법'으로 결론난 만큼, 삼성전자는 이러한 판단을 토대로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액을 회복하는 데 유리해졌습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입은 금전적 피해가 최소 2140억원이라고 봤지만, 삼성전자는 360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으니 추가적 증거를 더 붙여 민사소송에서 다시 받아내려고 하겠죠. 만약 당초 브로드컴이 신청한 자진시정안(동의의결안)이 받아들여졌다면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회복은 어려웠을 겁니다. 동의의결안은 위법 여부를 확실히 따지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니까요. 그래서 일각에선 동의의결제도를 '면죄부를 주는 제도'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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