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손꼽히는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로 부상했다. 중국의 자동차 굴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이 올 상반기 전통의 자동차 강국 일본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자동차 수출을 가장 많이 한 국가로 올라서면서다. 중국은 무엇보다 원자재 채굴·가공-배터리 생산-전기차 제조로 이어지는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이 가장 잘 갖춰진 국가다. 이제 '중국의 도움없이 전기차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전통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 강국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주저할 때 중국이 발빠르게 시장을 장악한 영향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중국 전기차 보조금 실태조사 등을 통해 중국 견제에 나선 것도 중국 전기차의 무서운 성장세에 제동을 걸기 위한 성격이 짙다.
중국 전기차 회사 BYD는 지난해 테슬라를 제치고 전세계 전기차 판매 1위 회사로 뛰어올랐다. 그 사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빅3'로 불렸던 폭스바겐·토요타·GM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자율주행·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중국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의 자율주행차 혁신을 이끌어 온 바이두는 올 들어 전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 상용화와 양산에 성공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치열한 내수 경쟁이 혁신적 아이디어들이 중국 자동차 시장에 접목되고 있는 이유"라며 "중국 전기차의 세계시장 침투율도 향후 3년간 아주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요타·혼다·닛산 등의 완성차 업체들을 앞세운 일본은 전통의 자동차 수출 강국이다. 하지만 2019년 481만대를 수출해 정점을 찍은 뒤 연평균 380만대 가량을 수출하는데 머물러 있다. 그 사이 중국이 전기차 판매 호조를 등에 업고 자동차 수출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전기차 산업 생태계를 미리 구축한 중국 업체들이 선전하면서 순위가 격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이 전체 수출 차량의 절반을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채우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중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전기차 수출 100만대를 돌파했다. 특히 독일·영국·프랑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수출 비중이 61.7%에 달하는데, 이는 중국 전기차의 제품 경쟁력도 입증되고 있는 것이란 평가다.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한 내수시장에서 덩치를 키운 중국 전기차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 공략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민간 업체는 ‘BYD’이다. 1995년 중국 선전에서 소형 배터리 제조업체로 출발한 이 회사는 2003년 국영 친촨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기차 제조를 꾸준히 늘리면서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85만대의 전기차를 판 BYD는 131만대를 판매한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 1위 회사로 올라섰다. 올해 BYD는 300만대의 전기차 판매 목표를 세웠다. 올해 상반기에도 BYD는 128만7000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이 분야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물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력을 끌어 올리면서 세계시장에서도 BYD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작년부터 수출에도 본격 시동을 걸었는데, 월 평균 1만대 이상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 향후 BYD가 중국을 넘어 글로벌 1위 전기차 회사로 도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BYD는 최대 강점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점이다. 이 회사는 자사 전기차에 적용되는 배터리와 전력 반도체를 100% 내재화하는데 성공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간 펼쳐진 공급망 대란에서 오히려 크게 성장한 배경이다. BYD는 테슬라와 비슷하게 원재료 직접 구매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아프리카에서 6개 광산 구매를 통해 리튬 2500만 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는 전기차 277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BYD는 향후 10년간 안정적인 원자재 조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BYD외에도 중국 내수시장은 기존 전기차 회사들 외에도 정보통신(IT)·플랫폼 기업까지 뛰어들면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리오토·샤오펑 등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고, 휴대폰·TV 등 전자제품을 만드는 중국 가전회사 샤오미도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최근 중국 정부로부터 전기차 생산 승인을 획득했고, 내년부터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IT 기업의 자동차 제조가 중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셈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는 상하이자동차와 합작해 생성형AI가 탑재된 고성능 전기차 '즈지 LS6'를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도 3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이토 M5'를 내놓고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장기적 안목에서 오랜기간 자원 확보에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에 큰 돈을 투자해 대형 광산회사들을 '사재기'했다. 중국이 전세계 광물 시장을 통제하게 된 배경이다. 또 광물 제련 분야에서도 중국이 가장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다. 배터리용 광물 제련은 철이나 구리 제련보다 3~4배 많은 전력이 소모되고, 제련 과정에서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배출도 많다. 이 탓에 엄격한 환경규제를 받는 서방 기업들이 손을 놓았다. 반면 중국은 확보된 광물을 수입해 저렴한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규제를 이용해 제련 산업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다보니 배터리 핵심부품인 양극재와 음극재 제조 분야에서도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중국은 양극재 시장의 77%를 차지했고, 음극재(92%), 분리막(74%), 전해질(82%) 등 다른 배터리 부품 생산도 압도적이다.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보면 중국 CATL이 32.7%로 압도적 1위였다. 배터리 내재화에 성공한 BYD도 3위(11.3%)를 기록해 LG에너지솔루션(16.5%)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히 CATL 한 기업 뿐만 아니라 전 공급망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장악력이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BYD와 CATL은 주로 LFP배터리를 생산한다. 그동안 에너지 밀도가 낮아 무겁고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최근엔 다른 이차전지보다 저렴하다는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 BYD는 배터리를 차제로 이용하는 자사 최신기술인 CTB(Cell-To-Body) 플랫폼을 적용하는 등 기술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밀도를 20%포인트 가량 끌어 올려 LFP배터리의 낮은 에너지효율을 보완했다는 평가다. LG화학이 모로코에 첫 LFP양극재 공장을 짓는 등 한국 배터리 회사들도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서 LFP배터리 생산에 발을 담그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스콧 케네디 수석고문은 "서방 어떤 나라도 배터리 공급망 자급화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제 어떤 식으로든 중국과의 협력 없이 전기차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바이두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2022년 세계 최초로 무인으로 운영되는 로보택시 면허를 획득했고, 올해부터 자율주행 전용 로보택시를 양산하고 있다. 바이두는 2028년까지 로보택시 생산량을 80만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테슬라의 로보택시가 2024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바이두가 1년 정도 빠른 셈이다. 바이두는 또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개방형 플랫폼인 아폴로(Apollo)를 빠르게 완성시켜 나가고 있다. 바이두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아폴로를 통해 업계 전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아폴로는 글로벌 차원에서 자율주행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원대한 야심이 담긴 프로젝트다. 중국의 5대 자동차회사뿐 아니라 독일의 다임러, 미국의 포드, 한국의 현대차, 일본의 혼다가 참여하고 있다. 아폴로는 AI 기술, 빅데이터, 자율주행 기술을 파트너사들이 상호공유해 단기간에 독자적 자율주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일곤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폴로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바이두가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슈퍼 고객으로 등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역내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중국을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방안을 담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프랑스도 최근 유럽 생산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는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을 발표했다. 전기차 생산, 배터리 수급, 유통 과정의 탄소 발자국 모두 반영한 환경 점수를 매겨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여기엔 각 부문 계수를 적용하는데 철강의 경우 중국산은 2.0, 일본산은 1.9, 한국산은 1.7을 곱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산은 1.4, 미국산은 1.1을 곱하도록 했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산 전기차가 가격에서 상대적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EU도 최근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실태조사를 선언했다. 중국이 막대한 전기차 보조금에 기반해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전기차를 판매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게 유럽의 시각이다. 유럽은 현재 10% 수준인 관세를 20%대로 대폭 상향해 중국 전기차의 유럽 시장 침투를 최대한 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내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지난해 8%였으나, 가격이 20%가량 저렴해 2025년께에는 점유율이 15%로 늘어날 것으로 EU는 예상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유럽이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에 시장을 빼앗겼듯이, 전기차 시장마저 주도권을 내줘서는 안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입장에선 중국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부흥을 막으려는 선진국들의 도전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우선 중국은 다양한 외국 기업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LG화학이 중국 화유그룹과 손잡고 아프리카 모로코에 LFP 양극재 공장을 짓는게 대표적이다. 모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IRA 보조금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중국 CATL도 미국 포드·테슬라 등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사를 세우는 형식으로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BYD는 유럽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2022년말 포드의 유럽 공장을 매수하려던 협상이 결렬된 이후 신규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2023~2025년 연간 31.2% 고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더 키울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의 전기차 장악력이 높아질수록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의 견제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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