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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로봇의 세계를 위협해 온 ‘서구 세계’의 거대한 무기인 ‘노마드’ 본체가 폭발하며 막 추락한 현장. 여덟 살 난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 분)가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알피가 탄생한 주요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한 터여서 기쁠 법도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알피에겐 아빠 같은 존재였던 인간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부상을 입은 채 본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같은 알피만 자그마한 구조기에 태워 떠나보내면서 말이다.
이 순간 웅혼한 오케스트라 배경 음악이 멈추고 잠시 정적이 감돈 후, 드뷔시의 아름답고 친숙한 피아노 독주곡인 ‘달빛’이 흐른다. 은은한 달빛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선율로 그리 처량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곡임에도 부모를 갓 잃은 듯한 어린아이의 애달픈 정서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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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이 133분에 달하는 영화 ‘크리에이터’의 극적인 드라마가 마무리되는 장면이다. 영화 속 드라마에 공감해 울음을 꾹꾹 참아온 관객이라면 ‘달빛’ 음악이 흐르는 이 대목에선 살짝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다. 영화의 음악은 거장 한스 짐머가 담당했다.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 극 속에 나오는 시간을 명시하면 2065년에 일어나는 인간과 AI의 대결을 그린 SF 블록버스터다. ‘몬스터즈’(2010) ‘고질라’(2014) 등을 만든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의 차기작으로 이 영화의 소재를 떠올린 후 각본가 크리스 웨이츠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직접 연출했다. 전작들이 이미 검증된 스토리를 각색한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순수 창작에 가깝다. 그만큼 독창적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 표방하는 세계관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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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결 구도는 AI를 절멸시키려는 서구세계와 AI와 공존하고 함께 번성하려는 비서구세계, 구체적으로는 ‘뉴아시안 세계’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싸움터는 주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접했던 ‘베트남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서구세계가 AI와 원수가 된 사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구촌 시대에 미래를 상상한 SF물에서 서구 대 비서구 대결 구도라니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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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중심축은 서구세계의 특수요원 조슈아와 뉴아시안 세계의 마야(젬마 찬)의 사랑이다. 또 다른 축은 마야가 탄생시킨 AI 앨피와 조슈아가 은연중에 느끼는 부녀(父女)의 정이다. 영화의 거시적인 대결 구도와는 달리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감정 교류는 매력적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주제 의식은 심오하고도 설득력이 있다. ‘마야’ 역을 맡은 젬마 찬의 표현대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이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지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영화는 진지하게 답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몰입도를 높인다. 조슈아 역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알피 역의 매들린 유나 보일스가 운명의 장난처럼 얽히는 감정을 나누는 연기는 일품이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다음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다.
알피 : "(아빠도) 천국에 가요?"
조슈아 : "아니, 착한 사람만 천국에 가는 거야."
알피 : "그럼 우린 똑같네. 천국에 못 가잖아. (아빠는) 착하지 않고, 난 사람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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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극 중 알피처럼 실제로 여덟 살 난 보일스의 진솔한 감정 표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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