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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의 옛 도심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풍스러운 붉은 색 벽돌의 건물 5개동 앞에 서면 누구나 의문 하나를 품게 된다. ‘중국에서 다들 탈출한다는데 이랜드는 어떻게 상하이 한 복판에 이만한 땅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당초 이랜드는 이곳을 중국 본사 및 물류센터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전략을 바꿨다. 건물 일부를 한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상하이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내어주기로 한 것이다. 오피스가 들어설 A동 7~10층에 중기 전용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B, C동은 첨단 스마트 물류로 무장한 동대문 패션 생태계를 그대로 구현했다. 이랜드 뿐만 아니라 중국 패션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원단 가동에서부터 디자인까지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집적 효과를 내려는 전략이다.
흥미로운 건 상하이시의 행보다. A동에 ‘원스톱’ 출장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상하이에 진출하려는 K기업들이 한 곳에서 인허가와 관련한 모든 절차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도장의 권력이 어느 나라보다 쎈 중국에선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1994년 상하이 법인을 세우고, 2년 뒤에 첫 브랜드 사업을 전개한 이랜드는 중국에서 ‘중화자선상’을 네차례 받았다. 중국에 진출한 전체 외자(外資) 기업 중 최다 수상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보다 많다.
착한 일 많이 하며, 오래 버틴 것이 이랜드의 성공 비결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랜드는 중국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깊숙히 주시했다. 2001년 100억원이었던 중국 이랜드 매출은 2010년 1조원을 돌파했다. 롯데, 신세계라는 유통 거인들이 두 손 들고 나간 중국 유통 시장에 이랜드는 2016년 본격 뛰어들었다. 쇼핑몰과 아울렛을 결합한 대형 점포를 중국, 성도에 3개점을 운영 중이고, 곧 2개를 더 열 계획이다.
한국 기업치고 중국 문제를 고민해보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경영자가 내려야 할 선택은 상당히 복잡하다. 중국 사업의 비중이 컸던 곳은 축소 결정을 내렸을 때 중국에서 벌어들였던 돈을 어디서 메울 것이냐가 고민이다.
다행히 기회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있다. 상하이시 공무원의 원스톱 서비스만 해도 중국의 콧대가 코로나 이전에 비해 한결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때마침 중국 내 한류 열풍도 예사롭지 않다. 상하이 중심가엔 ‘서울 야시장’이란 간판이 붙은 포장마차 거리가 매일 불야성이다.
중국이 한국 때리기에 나서기 직전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 여파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워낙 호되게 당한 터라 새로 기회의 문이 열려도 그것이 기회인 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중국 시장을 다시 들여봐야할 때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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