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7일 07: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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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도 충분하고 의지도 어느때보다 커서 기대는 되는데…. 마땅한 매물이 없네요."(한 글로벌 투자은행(IB) 임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엔씨소프트가 대형 인수·합병(M&A)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분야 M&A에 관심이 없었던 엔씨소프트가 달라졌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주력 게임들이 성장 한계에 부딪히면서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M&A에 총력전을 벌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주요 글로벌 IB들에 "국내외 게임사 매물을 가져오면 규모와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UBS 출신 홍원준 최고재무책임자(CFO) 주도하에 각 IB들과 소통하며 국내외 게임사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성과는 없다.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본격적인 협상 단계까진 나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게임업계에선 펄어비스의 경영권 매각 이야기가 돌면서 엔씨소프트 외에도 넥슨 카카오게임즈 등 주요 게임사들이 모두 물밑에서 접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주주 측이 매각 의사가 없어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엔씨소프트는 M&A에선 넥슨 넷마블 등 국내 대형 게임 3사에 비해 소극적인 곳으로 꼽혔다. 엔씨소프트는 2015년 넥슨과 손잡고 EA소프트 인수를 추진하다 무산된 직후 넥슨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았고, 넷마블을 백기사로 끌어들여 이를 방어하는 등 한 때 자본시장을 흔든 주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쟁 종식 후엔 좀처럼 자본시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 공개적으로 다시 M&A에 시동을 걸겠다 밝혔지만 주로 NFT, 메타버스 등 이종 사업 투자에 집중했다. 인공지능(AI) 자산운용사 디셈버컴퍼니, 엔터테인먼트 사업인 유니버스 등에 투자가 집중됐지만 대부분 실적 부진으로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를 밟았다.
과거 게임사 M&A 실패 사례가 소극적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는 2001년 480억원을 투입해 미국 게임사 데스티네이션게임즈를 인수했다. 당시 회사 자산총계가 1031억원에 그쳤던 점을 고려할 때 사운을 건 M&A로 평가됐다. 데스티네이션게임즈는 PC온라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대작으로 평가되는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한 유명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이 설립한 회사였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한 '타뷸라 라사'가 흥행 참패를 거두고 리처드 개리엇과는 스톡옵션 행사 등을 두고 소송전까지 벌이게 됐다.
엔씨소프트가 변화를 꺼내든 배경은 자명하다. 창사 이후 실적과 주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수준이다. 2분기 엔씨소프트는 매출 4402억원, 영업이익 353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71% 줄었다. 주가도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2021년 2월 주당 104만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22만4000원(16일 종가)까지 추락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캐시카우이자 주력 사업인 '리니지'의 성장성 둔화에 있다. 리니지를 모방한 게임들이 ‘리니지 라이크(유사품)’라 불릴 정도로 많아지면서 수익성에도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나친 과금 유도 위주의 수익모델에 대한 유저들의 피로감도 누적됐다. 트릭스터M, 블레이드앤소울2 등 엔씨소프트의 신작들도 대거 실패했다. 리니지에 집중된 사업모델을 분산하기 위해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기조가 더 강해졌다는 평가다.
'딜 가뭄'을 호소하는 IB업계에선 매물 발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상반기 기준 보유 현금 및 유동자산만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조단위 '빅 딜'을 단행하기에도 실탄은 충분하단 평가가 나온다. 한 글로벌IB 관계자는 "기업들이 몸을 사리는 환경 속에서 대형 바이어가 나타난 점은 이례적"이라며 "해외팀과 협력해서 매물을 찾고 있지만 매물이 씨가 마른 점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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