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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발전자회사에 전력거래대금을 최대 한 달가량 늦게 지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발전사 반발에 부닥쳐 철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영난에 빠진 한전이 제때 전력구매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전력을 못 사오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외상 거래를 늘리려 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국민 부담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 사이 한전은 현금이 말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발전사에 9일 단위로 한 달에 네 차례 전력구매대금을 지급한다. 만약 결제일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채무 불이행으로 다음날부터 전력 거래가 중지된다. 한전은 대규모 적자에 시달린 지난해 4월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을 통해 한 차례(9일) 대금 지급을 미룰 수 있도록 해놨다.
한전이 전력구매대금을 미룬 적은 없지만 최근 재무 상황이 악화하면서 전력구매대금을 한 달가량 늦게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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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올해 또다시 대규모 적자를 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현재 증권가에선 한전이 올해 7조1000억원 이상의 순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자본금·적립금의 합이 올해 20조9200억원에서 내년 14조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한전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다섯 배다. 즉 내년에는 한전채 발행 한도가 약 70조원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전채 발행 잔액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법을 개정해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는 한 한전은 한전채 추가 발행은커녕 오히려 기존 한전채를 갚아야 한다.
전기요금은 언제 인상될지 기약하기 힘들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말 4분기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내년 총선 전까지 전기요금 인상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인상 없이 한전의 경영난을 해소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외상 확대 등은 한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뇌관을 키우기만 하는 하수”라며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한전 재무구조가 악화하면 발전자회사까지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한전으로부터 전기판매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다음달 40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에선 이르면 다음주 발표될 한전의 추가 자구안에 주목하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해온 조직 축소와 인력 효율화를 초월하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추가 자구안을 낼 것”이라고 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추가 자구안이 발표되면 이를 명분으로 정부·여당이 전기요금을 인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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