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 관련주들이 급락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챗GPT 등장이후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장 큰 섹터 중 하나였지만 최근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고점대비 반토막난 종목들이 속출하면서 '손절이냐 추가매수냐'의 기로에 선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의료AI, 데이터AI 등 동반 급락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AI 세부 섹터중 가장 유망하다고 평가받으며 폭등했던 의료AI 관련주들은 최근 30~50% 이상 급락을 보이고 있다. 뷰노와 제이엘케이는 지난 9월 6일 고점 대비 각각 58.85%, 49.14% 하락했다. 루닛은 고점대비(9월 11일) 39.5% 떨어졌고, 딥노이드 역시 지난 9월7일 고점 이후 35.56% 하락했다. AI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AI 기업들도 급락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파트어쉽 관계인 영상AI 데이터업체 씨이랩은 지난 9월 13일 고점대비 33.91% 하락했다. 크라우드웍스(-65,87%), 아이티아이즈(-20.95%), 데이타솔루션(-12.77%) 등도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음성·영상 인식 AI 관련 기업인 셀바스AI(-35.21%), 오피스AI 프로그램을 만드는 폴라리스오피스(-38.25%) 등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중소형주들의 주가 역시 고전은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AI 대장주로 여겨지는 네이버 역시 고점(9월 15일) 대비 19.17% 하락했다.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고, 시장의 불확실성도 높아지면서 미래성장성보다는 당장의 현금흐름·안정성 등이 중요시되는 시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시점 실적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는 AI관련주들에게는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거시경제 변수가 AI 관련주들과 관련한 벨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우려를 자극하면서 급락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매출이 100억원대에 불과한 기업들인데도 시가총액이 너무 과하다는 벨류에이션에 대한 증권가의 우려는 이미 있었다"며 "전반적인 투심 악화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단기간에 추세가 바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AI 서비스 분야 성장은 기대보다 늦어질수도"
다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여전히 유망분야라는 의견은 유지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장의 전체 실적과 시가총액은 부침이 있다 하더라도 꾸준히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AI 관련 투자비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한 사모펀드 임원은 "2차전지 산업이 초기 시장 개화단계에서 한번, 본격적으로 실적을 내는 시점에 또 한번 주가가 크게 올랐다"면서 "인공지능은 이제 시장이 개화된 셈인데, 본격적으로 실적을 증명하기 시작하면 다시 한번 큰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등 시점과 관련해서는 미국 시장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AI분야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실적을 내기 시작하면 국내 시장의 분위기도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까지는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AI 관련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사모펀드 매니저는 "빠르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AI를 통해 돈을 버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생겨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이 AI 분야에 연간 조단위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열매를 맺을 시점에는 국내외 AI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했다.
다만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의 경우 AI 원천기술 개발업체가 아닌 AI 서비스 분야 기업들인 만큼 '기다림의 시간'은 시장 기대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태 한국투자신탁운용 매니저는 "단기적으로 생성형AI 이후 떠오른 여러 AI 어플리케이션 개발 기업들은 비우호적 매크로 환경으로 당분간 주가가 주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적성장과 주가반등에 있어 빅테크 기업 등 AI 관련 원천기술 개발업체가 먼저 성장하고 이후 AI 서비스 업체의 성장이 따라올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기때문이다. 처음에는 AI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회사가 많은 수익을 얻는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AI를 통한 오피스 프로그램, 영상 프로그램, 각종 제작프로그램 등을 파는 회사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란 의미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처음에는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성장하고 이후 이를 이용한 각종 모바일 서비스 공급업체들이 성장했다.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만큼 대형주와 소형주를 섞는 바벨 전략, AI 분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등의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향후 시장 성장과 별개로 개별 기업 차원에선 '옥석가리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실적을 내야할 시점이 오면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가 나뉠 것이란 의미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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