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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자산운용이 대표 뮤추얼 펀드 중 일부를 상장지수펀드(ETF)로 운용할 수 있게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과거 경쟁사인 뱅가드가 독점했던 펀드 운용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올해 특허가 만료되면서 뱅가드를 본떠 ETF 시장에 참가하는 운용사들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뮤추얼 펀드 중 일부를 ETF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운용안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뱅가드가 2001년 처음 개발한 운용방식이다.
시장에선 이를 'ETF 클래스 구조'라 불린다. 지수를 추종하는 뮤추얼펀드에 추가 클래스로 ETF를 출시하는 식이다. 클래스는 펀드 운용방식에 따라 부여되는 분류 체계다. 사실상 뮤추얼 펀드를 ETF처럼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뱅가드가 개발한 이중 지분 구조는 뮤추얼 펀드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와 자본이득세를 ETF를 통해 비과세하는 게 특징이다. ETF는 매각하지 않는 이상 과세가 되지 않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운용사가 능동적으로 자산을 매수·매도하는 액티브 ETF를 통해 뮤추얼 펀드에서 자본이득이 큰 상품을 실시간으로 사고파는 것이다. 시장에선 이를 '세금 투석기'라고도 평가했다.
뱅가드는 이 상품 구조를 통해 ETF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미국 ETF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운용자산(AUM) 기준으론 뱅가드의 AUM 총 60%가 다른 뮤추얼 펀드와 엮여있게 됐다. 운용자산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고 비과세 효과로 수요를 계속 창출한 결과다.
문제는 뱅가드의 상품 운용 방식에 대한 특허가 지난 5월 만료됐다는 것이다. 호주의 펄페츄얼 그룹, 다이멘셜 펀드 등 글로벌 운용사들이 앞다퉈 ETF 클래스를 출시에 나섰다. 뱅가드의 유력 경쟁사인 피델리티도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다만 ETF 클래스를 운용하는 피델리티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뱅가드의 전 최고재무책임자(CIO)로 ETF 클래스를 개발한 거스 사우터는 "피델리티의 주력 펀드는 주로 액티브 상품이었다"며 "ETF 클래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다소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SEC가 피델리티에 승인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뱅가드가 SEC에 승인받았던 이유는 주로 패시브 펀드에 ETF 클래스를 적용해서다. 과거 뱅가드도 액티브 펀드에 ETF 클래스 승인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바 있다.
반면 피델리티가 이번 승인을 거치고 나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피델리티가 현재 미국 ETF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그친다. 뮤추얼 펀드를 ETF와 연계해 사업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ETF 애널리스트 에릭 발쿠나스는 "이번 조치는 피델리티의 ETF 시장 접근성을 제고할 것"이라며 "향후 10년간 시장 점유율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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