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공금 수천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내부 직원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감사를 나온 중앙회는 고발인을 보호하긴커녕 되려 신상을 공개하고는 사건을 덮었다. 횡령 문제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새마을금고에 이처럼 ‘은폐된 횡령’의 규모도 상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새마을금고에 따르면 서울 삼선동 S 새마을금고(현재 동선동으로 이전)의 B 이사장은 2020~2021년 복지사업비를 7000여만원을 목적과 다르게 사용했다는 혐의로 이달 초 중앙회 차원의 조사를 받았다. 새마을금고 복지사업비는 지역사회발전이나 사회공헌 활동 등의 명목으로 사용하는 예산이다.
S 새마을금고의 복지사업비 지급 내역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B 이사장은 2020~2021년 복지사업비 7000여만원을 개인에게 20만~50만원 단위로 수십 차례 넘게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급자 명단엔 S 새마을금고의 임직원이나 대의원, 감사, 고액 예치자의 ‘친인척’들이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복지사업과 관계없는 인물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확보한 자료와 내부 증언을 종합하면 B 이사장은 먼저 회삿돈으로 지인들에게 돈을 준 다음 그의 가족 이름을 빌려 복지사업비를 허위로 일으키는 방식으로 부족해진 시재금을 메꿨다. 복지사업비 지급 사유로는 사업 실패나 실직, 건강 악화 등의 내용이 돌려막기식으로 사용됐다.
B 이사장 개인의 비위 의혹으로 치부하기엔 관계 기관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앙회는 이 같은 사실을 2021년 9월에 파악했는데도 “내년 감사 때 하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내부 직원이 행정안전부에 신고하고 나서야 중앙회는 지난달 팔을 걷어붙였다. 중앙회 담당자는 “일부 지급 내역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 거래가 없었던 새마을금고 회원에게 돈이 지급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에게 지급된 내용도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당초 중앙회 담당자는 “일부 지급 내역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 거래가 없었던 회원에게도 돈이 지급됐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진상 조사가 시작되자 “과거 한국 사회가 투명하지 않을 때 생겼던 일종의 ‘관례’”라는 반응을 보였다. 되려 허위로 발급된 복지사업비 영수증을 주변 직원에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문서엔 내부고발자의 신상이 담겨있었다. 단 담당자는 “그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앞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복지사업비는 사용처가 엄격히 금지된 계정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복지사업비는 다른 예산과 마찬가지로 목적 외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계정이라는 것이 중앙회의 설명이다. 경찰은 영수증이나 수령인, 지급 사유 등 관련 문건이 위조됐을 가능성에 대해선 내부 징계로 해결할 사안이라고 봤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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