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맡긴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일을 잘 수행하기를 바라면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덧붙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협력업체 근로자가 매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면 좋겠다는 요청, 협력업체 근로자 중 종전에 일을 잘한 것으로 평가한 사람들의 명단을 주면서 이 사람들에게 이번에 수출하는 고가의 자동차를 운반하는 일을 맡기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고자 한다. 자동차 운반 업무를 잘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대기업은 협력업체 근로자의 복지 혜택을 향상하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래는 자동차 회사의 본사 직원에게만 지급하는 명절 보너스를 협력업체 직원에게도 지급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추석 때 보너스 총액을 협력업체에 지급했다가 이른바 ‘배달 사고’가 일어날 것을 염려해 협력업체 직원에게 직접 추석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한다. 마치 협력업체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협력업체 직원을 가족처럼 대한 대기업은 이른바 ‘불법 파견’의 굴레를 쓰게 된다. 형식적으로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 도급계약을 체결한 뒤 실제로는 협력업체 직원에게 직접 지휘·명령하는 ‘근로계약’과 같이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원래 불법 파견을 금지하려는 목적은 ‘중간 착취의 배제’다. 협력업체가 근로자를 모집해 대기업에 보낸 후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고 실제로 일은 대기업에서 시키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대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협력업체 직원을 ‘가족’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남’처럼 대해야 한다. 협력업체 직원의 복지 향상을 통해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도급비를 인상해 좋은 협력업체를 선정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대기업의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지 않고 선의의 과실을 맺는 길이다. 대기업은 직접 지휘·명령하고 싶은 욕구를 참으면서 협력업체가 자율성, 독립성, 전문성을 갖고 업무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면서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때로 너무 가까워질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어쩌면 인간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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