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효모의 모든 염색체를 온전히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영국과 미국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효모의 염색체 16개를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합성생물학의 근간인 합성생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8일 국제학술지 '셀' '몰리큘러 셀' '셀 지노믹스'에는 10편의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일명 '합성' 게놈(유전체) 프로젝트라 불리는 국제 합성 효모 유전체 협력(Sc2.0)의 10년치 연구 성과다. Sc2.0은 영국, 미국, 중국, 싱가포르, 프랑스, 호주 등 200명의 연구자로 구성된 국제공동 프로젝트다. 최종 목표는 유전체 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인공효모를 만드는 것이다.
영국 노팅엄대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등의 연구진이 합성 효모의 서로 다른 염색체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각각의 염색체를 합성한 뒤 효모의 염색체를 대체했다. 이후 오류를 수정하는 디버깅 과정을 거쳐 효모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았다.
Sc2.0은 2011년 효모의 염색체 1개를, 2017년 6개의 염색체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성과를 더해 인류는 효모의 16개 염색체 전부를 합성할 수 있게 됐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패트릭 카이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진핵생물의 염색체를 만들어낸 것은 처음"이라며 "합성생물학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연구 성과로 생명의 구성요소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영감을 얻어 교배를 통해 효모의 합성 염색체 비율을 늘려갔다. 염색체 16개 중 하나만 합성 염색체로 교체한 뒤 교배를 통해 얻은 자손 중 합성 염색체 비율이 늘어난 개체를 찾았다. 예를 들어 원래 염색체가 a, 합성 염색체가 A라면 Aa와 Aa를 교배해 AA, Aa, Aa, aa를 얻은 뒤 AA를 찾는 식이다.
연구진들은 효모의 염색체를 똑같이 합성하는데서 더 나아가 편의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정크 DNA(아무런 유전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부분)와 무의미한 반복 DNA 서열을 제거하고 합성 유전자와 원래 유전자를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DNA 조각을 추가했다. 또 염색체 내 유전자 순서를 뒤섞는 서열을 추가했다.
염색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원래 유전자에서 전달리보핵산(tRNA)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다수 제거한 뒤 tRNA로만 구성된 새로운 염색체를 추가하기도 했다. tRNA로만 구성된 염색체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롭게 합성된 구조다.
제프 뵈케 뉴욕대 랑곤 헬스 교수는 "자연의 디자인과 다른 효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에게 새로운 생물학을 가르칠 수 있는 효모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벤 블런트 노팅엄대 교수는 "합성 염색체는 그 자체로 기술적 성과일뿐 아니라 친환경 생물 생산, 새로운 미생물 균주 생산, 질병 퇴치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합성생물학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합성생물학 시장 규모는 약 130억9000만 달러(약 17조원)로 2030년까지 연평균 18.97%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국가 합성생물학 이니셔티브'를 공개하며 2028년까지 총 3000억원을 투자해 합성생물학을 본격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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