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 딜레마에서 정부·여당이 찾은 해법은 대기업용 요금 인상이었다. 한국전력의 재무 위기가 심각하고 총선 전 전기요금 인상 시 국민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진퇴양난 상황에서 긴 고심 끝에 내놓은 결론이다. 하지만 일반 가정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다 빼고 대기업에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요금 인상에 따른 한전 영업이익 증가 효과는 올해 남은 기간 4000억원가량이고, 연간 기준으로는 2조8000억원 수준이다. 최근 3년간 누적적자(약 47조원) 해소에는 미흡한,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도 있다.
산업부는 또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 제조업 중심 전력 다소비 구조 등으로 전력원단위(GDP 1단위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량)가 지난 30년간 37% 증가하는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며 “구조 개선과 가격신호 기능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요금 인상에도 한전이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팔면서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올 3분기엔 그동안의 전기요금 인상 효과에 국제 유가 하락이 겹치면서 역마진이 해소됐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등으로 국제 유가가 불안한 상황이어서 4분기 이후에도 역마진이 해소될지는 불투명하다.
대기업에 초점을 맞춘 요금 인상은 근시안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가격 신호’가 기업에만 필요한 게 아닐뿐더러 기업 요금 인상이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번 인상안의 주된 부담 주체는 포스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회사들”이라며 “주택용과 일반용을 포함해 전반적인 가격 신호를 국민에게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의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언급에 대해 정책 엇박자라는 비판도 나온다. 산업부는 최근 미국 정부가 저렴한 전기요금을 보조금으로 간주해 한국 철강사에 상계관세를 부과한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싸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강 차관은 “이번 전기요금 인상폭은 한전법을 준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정”이라고 말했다. 유가·환율 추이와 사채 발행 한도를 고려해 최소한만 올렸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올 4분기 가스요금은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겨울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난방비 폭탄’ 논란으로 민심이 흔들렸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스공사도 미수금이 지난해 말 8조5856억원에서 올 상반기 12조2435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재무 위험이 여전한 상황이다. 미수금은 천연가스를 수입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면서 ‘나중에 받을 돈’으로 처리한 것으로 사실상 적자다.
박한신/이슬기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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