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공사엔 외국인 안돼"…하루 1만7000명 어디서 구해오나

입력 2023-11-10 18:38   수정 2023-11-11 02:52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들의 공장은 외국인이 현장 인력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기술이 유출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플랜트업계 관계자는 10일 국가 보안시설이란 이유로 17년째 막혀 있는 외국인 근로자 채용과 관련해 “기술 유출이 문제라면 해외 플랜트 시설에서 이미 문제가 일어났어야 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계는 연 10만~15만 명의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며 “단순 노무를 할 인력이 필요한데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입김’에 17년 전부터 금지
플랜트업계가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채용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논의가 제자리걸음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루 최대 1만7000명이 필요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사업 역시 인력 수급 계획을 짜지 못해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총 9조258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현장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사업 초반부터 차질을 빚을 상황에 처한 셈이다.

외국인 고용이 금지된 플랜트업계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역시 이에 동의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업계에 165만 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실제 공급은 150만 명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며 “내국인만 써야 하는 플랜트업계의 인력난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석유화학 공장이 국가 보안시설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다. 2004년 외국인 고용을 위한 산업연수생제도 도입 당시 석유화학 분야는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2007년 산업연수생 제도 대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석유화학 공사장이 국가 보안시설로 지정됐다.

당시 노사 협상에 참여한 대한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건설노조 측이 “내국인 일자리 보호와 보안 강화를 위해 플랜트 분야는 외국인 고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와 제철소도 덩달아 국가 보안시설로 묶였다.

오치돈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단순 노무직을 맡는 외국 인력이 기술을 빼가긴 사실상 어렵다”며 “2004~2006년에도 발전소 등에 외국 인력이 일했지만 기술 유출된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비상’인데 정부는 ‘핑퐁게임’
업계에선 만성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규제를 풀어달라고 줄곧 요청해왔지만 정부는 ‘핑퐁게임’만 벌이고 있다. 외국인 고용이 가능하려면 국무조정실장이 위원장인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취업 승인 업종에 플랜트 분야를 포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산업부, 국토부, 고용노동부 등 위원회 참여 부처가 합의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혀 있는 상황이다.

우선 국가 안보시설에서 해제되려면 산업부의 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업부는 건설업계 문제라며 국토부에 떠밀고 있다. 국토부는 반대로 국가 안보시설 해제가 우선이란 입장이다. 고용부는 플랜트 부문의 외국 인력 수급에 긍정적이나 양측의 논의만 지켜보고 있다. 부처 간 협의를 조율하는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아직 조정할 부분이 남아 있다”며 “해당 안건을 최대한 빨리 상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선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인력이 많이 필요해진 조선업은 작년부터 전 부처가 달려들어 외국 인력 공급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조선업을 위해 특별 비숙련 취업(E-9) 비자 쿼터제를 도입, 올해 5000명을 추가 배정한 게 대표적이다. 조선업에 투입된 외국 인력만 올해 1만4359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역시 기술 유출 우려가 있었지만 외국인이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며 “플랜트도 일부 첨단 기술 공정을 제외하고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우섭/곽용희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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