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관련 소송을 하면서 근로자들이 제출하는 가장 많은 증거 중 하나가 대화나 전화통화를 무단으로 녹음한 녹취록이다. 요즘 모든 전화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해 두는 근로자가 상당히 많고 통화뿐 아니라 상사와의 모든 대화도 녹음하는 경우가 있다. 소송하는 과정에 제출된 녹취록을 보면 의도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 전화나 대화를 해 유리한 내용이 대화 중에 나오도록 하는 일도 있다.
녹음을 하는 근로자는 보통 상사들의 갑질이나 성희롱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모 회사 팀장은 부하직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녹음을 해 왔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부하직원들이 자신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려 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녹음 천국이 됐고, 직장에서 대화나 회의를 할 때도 녹음되고 있는지 불안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녹음은 무조건 허용되는 것일까. 이를 방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대화 당사자 간 대화는 ‘공개된 대화’이므로 대화를 하면서 몰래 녹음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해당 대화를 녹음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최근 대법원은 공무원이 사무실에서 상사가 방문자와 대화하는 것을 녹음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3년 9월 27일 선고 2023도10284 판결). 위 사건에서 피고인은 해당 대화가 공개된 민원실에서 있었으므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가 아니고, 공무원인 상사가 불법 금품을 수수하는 정황이어서 정당행위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형수술을 받으러 간 환자가 마취상태에서 의료진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유죄이고, 해당 녹음 파일을 SNS에 올린 변호사도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화 당사자 간에서는 대화를 녹음하고 공개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까. 최근 하급심에서는 ‘대화 당사자 중 일방이 무단으로 녹음과 촬영을 하고 이를 영화에 공개한 행위에 대해 초상권 및 음성권을 침해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1년 1월 21일 선고 2020나47936 판결). 다만 음성권이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 이익형량을 통해 침해행위의 최종 위법성이 가려지는데 ①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 및 그 중대성, 침해행위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 침해 방법의 상당성 ②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 등을 고려해야 하고 무단녹음이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른 하급심에서도 전화통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고 녹취록을 작성하는 것은 피녹음자의 승낙이 추정되거나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한 헌법 제10조,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수원지방법원 2013년 8월 22일 선고 2013나8981 판결).
따라서 대화 당사자 간이더라도 무단으로 녹음해 공개하는 것은 무단녹음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불법행위를 구성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직장 내 성희롱처럼 증인 없이 두 사람만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사건은 무조건 무단 녹음을 금지하면 증거를 입증하기가 곤란해진다. 이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신고자의 녹음과 녹음 내용 공개를 무조건 금지하고 징계하는 것은 추후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이 될 수 있으므로 유의가 필요하다. 무단 녹음을 하지 않으면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을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징계 사유로 삼기 어려울 것이다. 무작위로 직장 동료와의 대화를 무단 녹음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별도 징계가 가능할 것이다.
영국 일본은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은 가능하나 제3자에게 공유나 공개할 수 없고, 독일은 녹취에 대한 사전 고지는 물론 녹음 기록의 활용 목적을 밝혀야만 가능하며, 프랑스는 상대방 동의 없는 대화 녹취는 물론 녹취한 파일을 소지하고만 있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도 2022년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MZ세대들의 반발 등 부정적 여론 때문에 철회됐다.
근로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대화의 녹음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무분별한 대화 녹음은 건전한 직장 문화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뿐만 아니라 그런 녹음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음성권 침해로 불법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인사담당자들은 사전에 무단 녹음을 금지하는 회사 문화를 정착하고 무단 녹음을 금지하는 정책을 공지해 구성원 간에 신뢰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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