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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참 아이러니해요. 옛날엔 존경받고 싶었는데, 아카데미상을 받은 뒤에 더 주의하면서 살고 있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게 족쇄가 생긴 거죠.” 배우 윤여정 씨가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놨다. 지난달 6일 부산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다. 첫 문장에 쓰인 ‘아이러니하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접하는 말이긴 해도 어딘가 어색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슬림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문장에도 비슷한 말이 쓰였다. ‘아이로니컬하다.’ 형태가 조금 다른 이 말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아이러니하다’와는 어떻게 다를까?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은 ‘아이러니하다’(모순된 점이 있다)와 ‘아이로니컬하다’(아이러니의 속성이 있다)를 다 올려놓았다. 두 풀이를 보는 이들은 곤혹스럽다. 두 말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아이러니하다’와 ‘아이로니컬하다’를 다른 말로 본 것 같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그런 느낌이 있다’는 뜻을 더하는 말로 풀이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하다. 실제 발화에서 그것을 구별해 쓰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감에 따라 두 말을 달리 쓰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비해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아이로니컬하다’를“일이나 상황이 예상밖의 결과를 빚어 모순되고 부조화하다”로 풀이했다. 좀 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두 말을 구별해 표제어로 올린 효과에 비해 우리말 조어법 훼손과 전통적 문법상의 혼란 및 부담이 더 커졌다. 우리말에 외래어가 들어와 동사나 형용사를 만들 때도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하다’는 그중에서도 대표적 조어 형태다. 이때의 접미사 ‘-하다’는 외래말과 결합해 우리말 어휘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생산성 높은 어휘다.
이것은 정규 문법화하진 않았어도 오랫동안 우리말에서 관용적 어법으로 굳어져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외래어+하다’ 형용사 24개 중 ‘명사+하다’꼴은 ‘아이러니하다’ 하나다. 예전엔 그리 쓰지 않았는데,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이 나오면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비슷한 형태의 말이 의미에 별 차이가 없고 그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 표준어로 삼는다는 게 우리 표준어 사정 원칙(제17항)이다. ‘아이러니하다’와 ‘아이로니컬하다’ 역시 우리말 조어법에 맞춰 ‘아이로니컬하다’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하다’ 앞 명사(아이러니하다)와 형용사(아이로니컬하다)에 따라 표기가 ‘-러-’ ‘-로-’로 다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이러니컬하다’였다. 2008년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웹사전으로 전환했으니 아마도 그때 표기가 바뀌었을 것이다. 외래어 표기를 이렇게 따로 구별한 것도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 표기의 이론적 측면은 학계나 연구계가 학술적 관점에서 고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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