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0일 15:4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01.35097075.1.jpg)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주관사와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등은 상장 예비기업이 증시에 입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비상장사의 재무제표, 사업성, 기술력, 미래 추정 실적 근거를 단계적으로 검토한다.
하지만 파두 사태로 IPO 검증 시스템에 공백이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겉핥기식 부실 검증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장미빛 미래' 그대로 수용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파두 사태처럼 거래소의 상장 예심 승인 이후 실적에 대해선 별도 실사 및 검증 절차 관련 규정이 없다. 그동안 파두처럼 IPO 공모 일정 전후로 실적 시즌이 도래하면 주관사가 통상 구두로만 중간 실적을 확인하는 게 관행이었다.파두처럼 상반기 실적 결산 이전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경우엔 4월과 5월 실적을 외부에 공시할 의무가 없다. 공모 과정에서 언제까지의 실적을 시장에 알려야 하고 안 알려도 되는지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도 없다. 사실상 주관사와 발행사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진 셈이다.
파두 주관사는 공모가격을 결정하던 시점인 6월 말에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하단 점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이 3분기부터 발주가 정상화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이 말을 믿고 예정대로 공모 일정을 진행했다.
파두의 경우 미래 매출 추정치와 실제 매출 간 괴리가 현저하게 벌어졌던 만큼 공모를 중단하더라도 다시 실사 및 검증을 진행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술성 특례 상장사는 미래 추정 실적을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만큼 현재 매출이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 향후 얼마나 나올지 등에 대한 검증이 일반 IPO 기업보다 세세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파두의 경우처럼 만약 2분기에 수주 계약상 매출 인식이 이연됐다면, 회사 측의 설명처럼 실제로 3분기에 재개될 가능성이나 향후 비슷한 상황이 재발할 우려 등을 검증해야 했다는게 IB업계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특례 상장 기업의 실적에 대한 부실 검증 문제는 파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 4분기 기술성장특례로 상장한 기업 9곳 중 2022년 연간 실적 추정치를 달성한 곳은 없다. 대부분 상반기 실적까지만 검증 절차를 거친 뒤 상장했는데, 실사 과정에서 하반기 매출 하락 가능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대형 증권사 IPO본부 관계자는 “주관사 입장에선 규정상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도덕적 해이로 인해 선관주의 의무를 어겼다는 점에선 자유롭지 못하다”며 “안 좋은 실적을 언급하긴 부담이 컸겠지만, 투자자와 신뢰를 위해서라도 발행사를 설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인력이 연간 100여개 IPO 소화
주관사의 부실 실사를 초래한 주된 원인은 인력 부족이 꼽힌다. 한 증권사의 IPO 본부가 한정된 인원으로 다수의 IPO를 소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사 및 검증 단계의 질적 저하가 발생한다.연간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하는 기업은 100곳(재상장·스팩 포함)이 넘는다. IPO 부문에서 ‘빅5’로 불리는 대형 증권사가 70%가 넘는 상장을 주관하는 구도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한해 적게는 10개에서 20개가 넘는 IPO를 주관한다. 일부 증권사에선 팀원이 3명인 IPO팀이 동시에 5개 기업의 실사와 공모 절차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로 공모주 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하자 증권사마다 경쟁적으로 IPO 딜 수임에 나서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 IPO 인력 풀은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 부담이 가중됐다.
문어발식 딜 수임이 이뤄지다 보니 세세하게 실사를 진행하기보단 회사가 제출한 자료에 의존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면밀한 검증이 필요한 특례 상장사보다 안정적 사업을 영위하는 일반 IPO기업에 대한 실사 및 검증은 더욱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다.
한정된 소수 인원이 100여개의 IPO 기업을 심사한다는 점에서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도 비단 상황이 다르지 않다.
거래소는 파두의 1분기 실적까지만 검토해 상장 예비 심사 승인을 내줬다. 6월 중순 상장 예비 심사 승인을 내줬지만, 4월과 5월 실적에 대해선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구두로조차 관련 실적 추이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결산이 끝나지 않은 실적에 기반해 심사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이지만, 파두가 올해 매출 추정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였다.
전직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미래 실적 추정치는 점쟁이처럼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최근 2분기 실적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확인했을 필요가 있다”며 “심사역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실적을 확인한 뒤 창구지도 등을 통해 해당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거래소의 심사가 일관성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거래소는 2년마다 순환보직을 실시한다. 인사이동과 심사 기업 증가 등에 따라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기 힘든 구조다.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 심사를 하는 금감원도 부실 검증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파두의 증권신고서 효력 심사가 7월에 진행됐던 만큼 분기 가결산 자료 등을 요청해 매출 추정치와의 괴리를 좁힐 마지막 기회였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파두는 오히려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올해 연간 매출 추정치를 높였다. 당초 상장 예비 심사 당시 거래소에 제출했던 추정치는 약 2400억원이었다. 거래소가 조정을 요구하자 절반 이하인 1100억원대로 낮췄는데 증권신고서에는 약 1200억원으로 다시 높였다.
IB 업계 관계자는 “파두는 기업가치가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올해 코스닥 최대어였던 만큼 상대적으로 대기업 IPO처럼 다소 안이하게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분기가 끝난 직후 공모가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해 거래소나 금감원이 2분기 실적까지 확인하고 진행했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