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부동산 경기 악화로 조합원이 사업 주체가 돼 땅을 사서 추진하는 지역주택조합 현장이 고전하고 있다. 늘어난 공사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리 상승으로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역주택조합원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 사업 참여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억대 분담금에 지역주택조합 사업 포기도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김포시의 A지역주택조합은 다음달 조합 해산을 위한 총회를 연다고 예고했다. 2012년부터 2900가구 규모로 추진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이다. 오랜 시간 추진해 토지 매입률도 90%에 달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으로 평가받았다.그러나 2021년 늘어난 공사비와 사업 장기화로 인한 PF 부담이 가중되며 조합원당 수천만원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하자 조합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조합 내에서 분담금을 놓고 조합원 간 갈등이 커지며 사업이 2년 가까이 중단됐다. 사업이 중단된 사이 이자 부담이 더 커지자 결국 조합 해산 논의가 시작됐다. 한 조합원은 “이미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분담금으로 지급한 상황인데, 조합을 해산하면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그나마도 대출 이자가 불어나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산 중구의 B지역주택조합 역시 최근 억대 추가 분담금을 놓고 조합원 사이 분쟁이 커졌다. 사업이 장기화하며 조합원당 2억원이 넘는 추가 분담금이 책정됐다. 입주 6개월을 앞두고 낼 수 없다는 조합원과 사업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조합 집행부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급기야 현장에는 ‘공사비 미지급으로 조합원은 입주할 수 없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고, 조합원은 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업 방식을 바꾼 지역주택조합도 있다. 부산 사하구의 C지역주택조합은 최근 기존 사업을 포기하고 보훈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는 안건을 총회에 상정했다. 지금까지 낸 분담금을 보전받고 새 주택을 받기 위해선 사업 방식을 변경해서라도 사업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장은 최근 PF 대출이 어렵고 공사비가 상승해 사업성이 악화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일반분양 이익을 얻을 수 없더라도 사업을 완성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금리·공사비에 현장 시름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일정 자격 요건만 갖추면 청약통장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주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주택 건설 예정 가구 수의 절반 이상만 조합원을 모으면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전체 대지 중 80% 이상에 대한 토지 사용승낙서만 받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기존 재건축 사업보다 허들이 낮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그러나 주변에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추진하다 중단된 곳이 적지 않아 ‘지옥주택사업’이라고 불리는 등 비판받기도 한다. 조합원 분담금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중도에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토지 사용을 승낙받은 뒤에도 실제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많다. 사업계획 승인을 위해선 ‘95% 이상 토지소유권’ 확보가 필요한 것도 부담이다.
최근엔 공사비 증가와 PF 금리 상승에 발목이 잡힌 사업장이 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건설공사비지수(잠정치)는 153.67로, 8월(151.23) 대비 2.44포인트 상승했다. 3년 전 같은 기간(119.89)과 비교하면 33.78포인트 올랐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과 건설 현장 임금 상승이 겹치면서 공사비 증가폭은 더 커지고 있다.
조합의 사업 진행에 필요한 PF 대출 금리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연 3.97%에 그친 91일물 기준 기업어음(CP) 금리는 이달 연 4.31%까지 상승했다. 부동산 본PF 금리는 연 10%대로 올랐고, 토지 매입을 위해 진행하는 브리지론 금리는 상단이 연 20%에 달한다. 토지 매입에 성공해 놓고도 대출이자 부담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현장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현장을 시공 중인 건설사 관계자는 “일부 조합원이 분담금을 거절하면 그대로 사업이 멈춰 모든 조합원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조합원 탈퇴도 힘들어 참여 전에 사업성 검토가 필수”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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