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을 포함해 170명에 달하는 연주자들은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사진)을 오페라 같이 장엄하게 연출했다. 연극, 오라토리오, 교향곡, 오페라를 합친 이 독특한 작품은 1988년 KBS교향악단의 초연 이후 국내에선 전곡 연주가 거의 없었던 곡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는 활기차고 명확한 연주로 관객에게 새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의 조연과 같은 합창단을 잘 운영한 게 돋보였다. 이 곡은 중요한 장면을 모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합창은 보조 역할만 한다. 심지어 성악진에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없다. 두 젊은이의 사랑이 언어로 표현하는 노래보다는 상징과 추상의 세계인 오케스트라 연주로만 표현될 수 있다고 작곡가가 믿었기 때문이다.
1부의 몬테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 간 전투를 묘사한 오케스트라의 전주곡 이후 13명의 합창단과 메조소프라노, 테너 독창자가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트레일러처럼 알렸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인상 깊은 가창을 선보였고, 테너 문세훈은 익살스러운 노래로 로미오의 유쾌한 친구 머큐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부의 홀로 있는 로미오와 이어지는 캐퓰릿가의 연회는 짜임새 있는 해석과 활력 있는 연주로 훌륭한 ‘느낌표’를 선사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들썩이는 연주로 관객에게 기분 좋은 흥분을 전달했다. 무도회가 무르익을 무렵 중간에 합창단이 입장해 합창석에 착석하는 것도 좋은 시각적 효과를 발휘했다.
핵심인 사랑의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불타오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미오의 간청과도 같은 첼로의 울림에는 칸타빌레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고, 발코니 장면의 정열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현은 농염함이 부족했다.
2부의 마지막 곡이자 전곡 가운데 오케스트라의 명인기를 뽐내는 스케르초인 ‘맵 여왕’은 비교적 매끄럽게 연주됐다. 중간에 플루트와 잉글리시 호른의 나른한 악구에서 프랑스적이라 할 수 있는 고혹적인 뉘앙스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부족한 프랑스적 에스프리(프랑스인 특유의 자존심)는 합창단의 노래 전반에서도 그랬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연주가 어우러진 3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죽음 장면을 거쳐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연상하게 하는 종결부로 이어졌다. 바리톤 독창은 합창석으로 몸을 돌려 꾸짖는 듯한 연기를 곁들여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총평을 하자면 디테일에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지휘자의 명쾌한 진행과 이에 부응하는 연주자들의 호연이 좋은 인상을 남겼다. 청중의 환호에 지휘자는 비제의 ‘카르멘’ 1막 전주곡을 앙코르로 화답했다. 베를리오즈의 도전적인 대곡에 이런 앙코르가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즐거운 마무리였던 건 확실했다.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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