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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는 내 거야. 그대의 목소리는 향로 같았고, 그대를 볼 때면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 그런데 왜 나를 보지 않았던 거야? 나를 봤다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을 텐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목청껏 소리치던 여자가 잘린 남자의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쥔 채 키스를 퍼붓는다. 그를 흠모해온 계부이자 국왕은 “저 여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떼로 몰려들어 방패로 그녀를 찍어 누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격렬한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고 사람들은 침묵에 쌓인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같은 공포 스릴러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로 불리는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결말이다. 이 작품이 쓰인 지는 100년도 넘었다.
살로메엔 인간의 금기가 여럿 담겨 있다. 우선 계부 앞에서 주인공인 살로메가 몸에 걸친 베일을 차례로 벗어던지며 야릇한 몸짓으로 춤추는 장면. 이 연출은 1905년 초연 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흥행엔 성공했지만, 음악계에선 ‘음란 오페라’라고 낙인찍혔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살로메’ 공연을 27년간 금지했다.
바로 그때 정원에 있는 지하 감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인은 회개하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한. 남편을 살해하고 그의 이복형제인 헤롯왕과 재혼한 왕비 헤로디아스를 겨냥해 외친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에 끌린 살로메는 나라보트를 시켜 요한을 감옥 위로 끌어 올린다. 달빛 속에 드러난 요한에게 한눈에 반한 살로메는 열렬히 구애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 않고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이후 헤롯왕이 살로메에게 “원하는 모든 것,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자신을 위한 춤을 춰달라고 요구하면 살로메는 기다렸다는 듯 관능적 몸짓을 선보인다. 이때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이 오페라의 시그니처 악곡인 ‘일곱 베일의 춤’이다.
흡족해하는 헤롯왕에게 살로메가 말한 소원은 “은쟁반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것. 헤롯왕은 신성한 요한을 죽이면 화를 입을 것을 걱정하지만 살로메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요한을 사형에 처한다. 결국 한 병사가 요한의 머리를 잘라 가져오고, 살로메는 사랑을 부르짖다 헤롯왕의 명령에 죽임을 당한다.
약음기를 낀 현이 긴 선율을 뽑아내면서 마치 하늘에 거대한 구름이 드리운 것 같은 풍성한 양감을 불러내기도, 이따금 팀파니 주자가 악기를 강하게 내려치면서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는 극도의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탬버린, 첼레스타, 마림바, 하프 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과 슈트라우스 특유의 반음계 선율은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3박 리듬으로 전원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다가도 캐스터네츠의 신호를 시작으로 전투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극적인 전개는 박진감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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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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