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영준 전 회장, 보석 석방…이화그룹 경영권 개입하나 '촉각'

입력 2023-12-01 09:12   수정 2023-12-01 14:08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와 이화그룹 계열 상장사 3곳을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아넣은 김영준 전 이화그룹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김 전 회장 구속으로 촉발된 이화그룹 사태는 계열사 이화전기, 이아이디, 이트론의 주식거래 정지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액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

1일 한국경제신문의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부 형사부는 김 전 회장이 신청한 보석을 지난달 23일 인용했다. 법원은 지난 10월 김 전 회장의 보석 요청을 한 차례 기각했으나 지난달 요청한 보석은 허가했다.

재판부는 보석 허가 조건으로 김 전 회장에게 보증금 5000만원을 납부하되 2000만원은 보험증권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주거지는 제한하고, 허가 없는 출국은 금지했다. 여기에 위치 추적을 위한 전자장치 부착 명령, 사건 참고인·증인 등과의 접촉도 차단했다.

현재 이화그룹 실소유주로 불리는 김 전 회장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계열사 4곳에 가족을 고문으로 허위 등재해 급여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114억원을 횡령한 혐의와 주가부양, 탈세 목적 373억원 재산 은닉,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계열사 3곳이 자신에게 전환사채 등을 시가보다 저렴하게 매도 187억원의 손해를 입게 한 혐의를 받는다.

문제는 김 회장의 부정행위로 경영 개입이 드러나자 이화전기, 이트론, 이아이디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는 점이다. 김 전 회장은 과거 이화전기와 이아이디 등 이화그룹 계열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상장폐지 실질 심사 대상에 해당된다는 확약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 김 전 회장의 보석으로 이화그룹 경영권 매각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향후 이화그룹 계열사의 거래재개를 위해선 최대주주 변경 여부가 중요하다. 현재 이화그룹 계열 상장사 3곳 모두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돼 거래재개를 위해서는 최대주주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화그룹 계열 상장사 3곳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이화전기→이아이디→이트론→이화전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졌다. 실제로 이트론은 지난 13일 최대주주인 이아이디가 자사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일각에선 보석으로 풀려난 김 전 회장이 경영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화그룹 계열사를 매각할까 우려하고 있다. 이화그룹은 순환출자 구조상 김 전 회장이 직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김 전 회장은 현재 측근을 경영진이나 이사진으로 내세워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형태다. 이화그룹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김 전 회장 입김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소유주인 김 전 회장이 보석으로 나오면서 이화그룹 경영권 매각이나 최대주주 변경은 김 전 회장 입김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과정에서 자칫 회사의 경영 정상화보단 실소유주 이익에 맞춰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과의 경영권 분쟁도 한층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이화그룹의 소액주주들은 임시주총에서 회사 측과 벌인 표 대결에서 패했으나 계속해서 지분을 모으고 있다. 현재 이화그룹 소액주주단체는 이화전기 19.85%와 이트론 5.29%, 이아이디 5.40%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김영준 전 회장의 보석을 두고 이화그룹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볼멘소리도 나온다. 김 전 회장이 2001년 대규모 주가조작과 시세차익 범죄로 물의를 일으킨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 배후이자 연루자로 지목됐을 때 검찰 수사를 피해 잠적했으며, 2015년 이화전기 주가조작 등의 혐의를 받을 땐 석 달간 도피행각 끝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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