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미리 잡힌 남편의 일정에 맞춰 제주로 갔고, 남편의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이미 밖은 어두워졌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들과 둘이서 리조트에 머물던 시간도 꽤 괜찮았다. 그럼에도 연락한 번 없던 남편에게 화가 났고 따져 묻는 내게 본인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예정된 ‘일’을 하고 있었던 남편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좋았어야 할 여행에서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지고 부부는 냉랭했다.
아이가 매우 어릴 때 우리는 종종 치열하게 싸우곤 했다. 아이가 커가며 감정적인 갈등이나 빈도는 줄었지만 오히려 어쩌다 한 번씩 부딪힐 때면 더욱 치열해졌다. 둘 다 물러섬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리고 행동이 제한되던 어릴 때와 지금의 갈등의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부부가 둘 다 사회생활과 일,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고 육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에서 오는 갈등은 이렇다. 아이는 여태껏 유치원이나 학교에 지각을 한 적이 없었고 아침을 거르고 간 적도 없다. 등원이나 등교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이면에 아이를 준비시키는 부모는 얼마나 아이를 다그칠 수밖에 없는지 짐작이 갈 테다.
지각을 하면 정말 대단히 큰일이라도 나는 마냥 아침 등교준비에 아이를 몰아붙인 결과였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매일의 루틴을 약속대로 해내는 연습을 제대로 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지체되거나 시간을 넘기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는 너그럽지 못한 엄마였다. 어쩌다 가끔이 아닌 매일을 하다 보면 참아줄 수 있는 역치는 점점 낮아져 아이의 행동이 조금만 지체 되도 행동에 대한 지적과 분노를 표출하곤 했다.
어린시절 편식을 개선해 보겠다고 여러 음식을 시도하다 보면 예외 없이 아이에게 화를 내곤 했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엄마는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라는 스스로의 푸념을 아이에게 종종 내뱉는다. 식습관이든, 학습이든, 정시에 시간을 맞춰 나가는 것이든 완벽하게 하려는 시도에 아이가 응하지 않을 때 오히려 감정적인 화를 돋우게 되고 안 하니만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너무 애를 쓰고 살고 있었다. 그 의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백’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차라리 어느 누가 소홀하거나 대충한다면 쉬운 문제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팽팽하고 어느 한쪽의 양보로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에도 둘 다 잃는 게임을 벌이곤 했다.
부모의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 더 허술하고, 뛰어나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실제로 우리가 완벽한 부부이거나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더 슬픈 사실이지만) 좀 더 너그러운 부모가 필요하지 않을까. 적어도 아이에겐 말이다.
상대방의 실수와 날 선 반응에도 ‘그래, 당신도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길 수 있는 좀 더 너그러운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겐 필요하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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