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발언처럼 70대 이상은 ‘금융 약자’로 통한다. 대부분 소득이 끊겨 어려운 데다 금융이해력도 떨어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70대 고령가구의 42%는 저축액이 1000만원 미만이다. 70대의 금융이해력은 61.1점(한국은행·금감원의 2022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으로 전 연령 평균(66.5점)을 밑돈다. 이런 고령층에게 은행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을 권유한 것 자체가 무지성이라는 지적은 일리 있게 들린다.
그런데 ELS 가입자만 떼어 놓고 보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금감원이 2018년 6월 말 기준으로 ELS로 대변되는 파생결합증권 개인투자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6290만원이었다. ELS는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투자 수단이라는 의미다. 전체 투자자 75만 명 중 50대가 29.8%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21.5%), 60대(21.2%) 순이었다. 70대와 80대 비중은 각각 7.7%와 1.3%에 불과했다. 그런데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70·80대가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80대 이상 가입자의 평균 투자액은 1억7230만원에 달했다. 70대도 1억230만원이었다. 60대(7530만원)와 50대(6500만원), 40대(5410만원) 투자금은 그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30대(3080만원)는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한 금융상품에 평균 1억원 이상을 넣는 투자자를 단순히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융 문맹이나 약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산이나 소득이 많을수록 금융이해력이 높은 것은 상식이다.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를 봐도 고소득층(연 소득 7000만원 이상)의 금융이해력은 68.7점으로 저소득층(3000만원 이하·63.2점)과 격차가 있다. 더구나 은행 ELS 가입자의 90% 이상은 기존 투자 경험이 있는 재투자자다.
그동안 투자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보상 비율을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온 게 현실이다. 2020~2021년 사모펀드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금융당국은 판매사에 사실상 ‘전액 배상’을 압박했다. 고령자는 손해배상 때마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 왔다. 물론 주식·투자 게시판에 오른 사연처럼 이름만 겨우 쓰는 노인에게 ELS 가입을 권유한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면죄부의 획일적 기준은 될 수 없다.
금융사에 판매 적합성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자에게는 자기책임 원칙이 있다. 특히 이번 ELS 사태는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불거진 불완전 판매 논란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판매사가 상품의 위험성과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리는 과정에서 녹취와 자필서명을 의무화하고, 2영업일 이후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며 은행 본점이 모든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 가입 의사, 판매직원 설명 등 불완전 판매 요소를 점검하는 등 이중삼중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생겼다. 이번 사태가 향후 금융 분쟁 조정의 기준이 되는 만큼 판매사는 물론 투자자 책임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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