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제도 개선에 대한 투자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과거 현실적 한계 때문에 무산됐던 전산시스템 구축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무차입 공매도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행위가 실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산시스템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2018년부터 무차입 공매도 적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불법 공매도를 예방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산시스템 구축이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에서는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근본적인 공매도 개선 대책을 주문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된 공매도 금지가 더 연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불법 공매도 문제를 더 방치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어렵게 해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뿐 아니라 증권시장 신뢰 저하와 투자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공매도를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이 관련 협의회서 발표한 공매도 제도 개선안에는 △중도 상환 요구가 있는 기관의 대차 거래 상환기간을 개인의 대주 서비스와 동일하게 90일로 하되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개인의 대주담보비율(현행 120%)을 기관과 외국인의 대차와 동일하게 105%로 낮추는 방안 등이 담겼다.
기존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때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담보총액의 비율을 120% 이상 유지해야 하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105%를 적용받고 있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었다.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를 집중적으로 조사해 엄벌하고 시장 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에 대해서도 적법성과 적정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당정은 불법 공매도 거래자에 대한 주식 거래 제한, 임원 선임 제한 등 제재 수단을 다양화하고 처벌 수준도 강화하기로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차단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도입을 확정 짓지는 않은 상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내년 상반기까지 도입 가능성 유무를 다시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 10월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무차입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은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식을 빌리는 거래는 목적이 다르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주문을 한다.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가 어렵고 파악을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과거에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단행한 사례는 △금융위기(2008년 10월 1일~2009년 5월 31일) △유럽 재정위기(2011년 8월 10일~2011년 11월 9일) △코로나19(2020년 3월 16일~2021년 5월 2일)로 총 3번이 있었다. 모두 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증폭과 동반된 증시 급락이 나타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매도 금지의 경우 과거와 달리 대형 위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금지 조치가 주식 시장의 가격 발견 효과, 유동성 공급 등 공매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저해한다는 점에서 한국 주식시장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면서 "금융위가 공매도 특별 조사단을 구성해 무차입 공매도 근절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금융 시장 투명성은 개선될 여지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2018년에도 금융위원회가 무차입 공매도 적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해당 시스템 구축을 5년 이상 지체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공매도 금지 기간 내에 반드시 불법 공매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2018년 5월 '주식매매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모든 매도 시 매도자의 잔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무차입 공매도 등 이상거래 적발을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매도자의 모든 거래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업계 등과 논의한 결과 동 계획 추진을 중단했다.
공매도 해당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려면 계좌잔고, 대차정보, 계좌 미표시 매도권한 발생 정보 및 결제 이전 매수·매도 주문량 등 매도자의 모든 거래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매도자가 아닌 제3자가 관련 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여주식, 투자자 집단계좌 등 공매도에 해당하지 않는 정상거래의 상당수가 이상거래로 적출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금감원과 거래소는 금융투자협회 및 업계와 함께 '무차입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 TF'를 구성하고 지난달 23일 첫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공매도 거래 기관투자자의 내부 전산시스템 구축과 함께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 실현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공매도 제도 개선 관련 대책에 대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담보비율을 130% 이상으로 통일해달라는 것이 개인투자자 요청사항인데 오히려 개인투자자 담보비율을 105%로 낮춰주겠다는 것은 공매도 투자에 서투른 개인들에게 빚투를 권장해 개인투자자 피해가 증가하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 대표는 "공매도에서 1% 내외를 점유하는 개인의 담보비율을 낮추고 99%가량을 차지하는 외국인과 기관의 담보비율을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혹세무민(세상 사람들을 속여 미혹하게 만들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 개선책"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입되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졌을 때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 삼간을 태울 수 있다"며 "우선 가능한 부분부터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해외시장에서는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의 비중과 공매도에 대한 인식 차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20~30%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60% 정도를 차지해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우리나라는 공매도 자체를 문제 삼는 투자자들이 많지만 해외에서는 공매도의 효율성이 널리 인정된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 들이고 공매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 것도 다르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관련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 또는 공매도가 불공정 거래행위에 연루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매도의 경제적 기능을 고려할 때 이를 이유로 공매도 전면금지와 같은 강력한 규제수단을 빈번하게 활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적으로 공매도 제도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시장 질서에 맡기면서, 일부 시장질서 교란자와 교란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대주거래 서비스 개선을 위해 대주풀(pool)을 확대하려는 노력과 대주거래조건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며 "공매도의 경제적 기능을 인정하면서 합리적인 시장구조 구축을 위한 제도적 환경정비를 통해 공매도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