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1일 08:0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사조그룹은 연말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계열사끼리 '품앗이'로 지분을 사주고 있다. 사측 의결권이 늘어난 곳은 사조대림, 사조산업, 사조동아원, 사조오양, 사조씨푸드로 모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다. 시가총액 규모가 적게는 600억원(사조씨푸드)부터 최대 3000억원(사조대림)에 이른다. 동원된 계열사들은 10월부터 최근까지 약 세 달간 집중적으로 상장 주식을 매입했다.
삼아벤처와 사조아메리카는 사조씨푸드 지분을 각각 1.36%, 2%를 사들였다. 사조산업엔 삼아벤처가 2.4%에서 3%까지 지분을 늘렸고 사조농산도 0.05%를 신규 확보했다. 사조산업과 사조동아원은 각각 사조오양 3% 주주가 됐다. 사조대림 주식 매집엔 오너 일가도 참여했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과 주지홍 부회장이 주식을 신규 취득했다. 각각의 지분율은 1.30%, 2.54%에 이른다.
보유 지분율은 모두 3%를 넘기지 않고 있다. 이는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감사위원 선임에 적용되는 '3%룰'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3%룰은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최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말한다.
사조그룹은 작년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곳이다. 작년 사조오양 정기 주총에서 차파트너스가 추천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의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가 소액주주의 지지를 받아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사조오양의 최대주주는 사조대림(60.53%)으로 당시 배당, 정관 변경, 자사주 매입 등 주요 주주제안을 부결시키는 데엔 성공했지만 감사위원 선임만은 3%룰 탓에 막지 못했다.
'거수기' 이사들 사이 이상훈 감사위원의 독자노선은 사조그룹에게 번번이 눈엣가시가 됐다. 사조오양 반기보고서를 보면 올해 개최된 6번의 이사회에서 9명(사내이사 2명·기타비상무이사 2명·사외이사 5명)의 이사 중 이상훈 사외이사만 독자노선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외이사 법률자문비용 처리의 건, 이사후보 추천의 건, 결산 배당의 건, 성열기 감사위원 선임의 건 등에 유일한 반대표를 행사했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설치의 건, 내부거래위원회 설치의 건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안건에 대해선 나홀로 찬성표를 던졌다.
공교롭게도 소액주주가 힘을 형성한 사조오양만이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있지 않은 상태다. 주진우 회장을 비롯해 오너 3세인 주지홍 부사장도 2015년 3월부터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올랐는데 사조오양에도 주지홍 부사장은 사내이사로, 주진우 회장은 기타비상무이사로 있었다. 이들의 임기는 2022년 3월 주총까지였지만 2021년 9월 분기보고서부터 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았다.
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사조그룹 오너일가는 소액주주로부터 비판 여론이 불거지면서부터 이사회 임원에서 빠졌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문제될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한 차원에서 등기임원직에서 내려왔다는 게 내부 공통적인 시각"이라며 "오너 일가가 다른 계열사로도 방어선을 치려는 이유"라 말했다.
당시 사조그룹은 국정감사에서 '의결권 쪼개기'로 뭇매를 맞았던 때였다. 당시 소액주주 대표 송종국 씨의 등기이사 겸 감사위원 선출을 막기 위해 쓴 꼼수가 적발됐다. 정관을 개정해 감사위원 전원을 사외이사로 전환하고 주진우 회장이 소유한 사조산업 주식 중 일부를 문범태·박창우 씨에게 대여하는 식으로 지분을 쪼갰다. 3%룰을 피해 실질적으로 9%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2년이 흐른 현재 행보는 더 과감해졌다는 평가다. 사조오양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도 소액주주의 지지를 얻은 감사위원이 선임될 것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순환출자를 늘리고 있다. 다만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사조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아니라 순환출자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파트너스 측은 "사조그룹은 지배구조에 문제가 많다고 알려진 식품업계 내에서도 악명이 높은 곳"이라면서 "각 계열사들이 품앗이 매집에 동원되면서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대상으로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과 배임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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