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호주, 한국 등 주요 22개국의 언론 기사에서 '경제', '정책', '불확실성' 등 3개 단어가 함께 언급되는 빈도수가 최근 5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실시한 양적완화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경제 정책이 의도했던 효과를 낼 가능성이 낮아졌고, 증시의 개별 종목 차원에서는 밸류에이션(실적을 통한 적정 주가 산출)을 통한 주가 예측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증권가에 따르면 주요 22개국의 언론 보도를 기초 데이터로 산출되는 '글로벌 경제 정책 불확실성(EPU) 지수'가 2018년 2월 126.47에서 지난달 261.54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지수의 흐름을 보면 단발적 급등이 아닌 추세적 증가세가 확연하다. 한국의 언론 보도에 기반해 산출한 '한국 EPU 지수'는 2018년 2월 71.16에서 올 9월 196.19로 3배 가까이 급등해 글로벌 지수보다 더 큰 증가폭을 보였다.
EPU 지수는 불확실성 등 3개 단어가 언급된 각국 신문 기사의 수를 표준화해 매달 산출된다. 스콧 베이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등 석학 3명이 공동 개발했으며, 국내의 연구기관 보고서나 언론 보도 등에서도 종종 인용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제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이 지수의 최신 수치를 매달 업데이트한다. 한국경제신문이 글로벌 EPU의 기초데이터 산출 대상 언론에 포함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EPU 지수가 높아진다는 건 실물 경제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 및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작된 양적완화 정책이 이어지며 이같은 현상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주요국이 통화나 재정정책을 펼 때 경제의 원하는 부분이 반응하기보다 자산시장이 더 민감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이 때문"이라고 했다.
양적완화의 영향으로 주가 등 자산 가격이 경제의 펀더멘털(경제성장률, 기업실적, 물가)보다 비펀더멘털(유동성, 시장 심리)에 더 밀착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6월 "과거 10년 동안의 주가와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상관계수 평균값이 0.38에 불과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가에 실적은 38%만큼만 영향을 줬고, 나머지 62%는 다른 변수가 영향을 줬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센티멘트(시장 심리)를 체계적으로 분석, 주가 흐름을 예측하고자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 금융데이터 분석기관 마켓사이키(MarketPsych)의 리처드 피터슨 대표는 지난해 5월 성균관대가 주최한 '디지털 경제와 금융의 트렌드' 국제 컨퍼런스에서 "주가가 기업 실적이 아닌 소셜미디어(SNS) 여론에 좌우될 수 있다"며 "실제로 미국 러셀3000 지수를 보면 SNS 심리지수와 동행하는 패턴이 발견된다"고 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트레이딩 부서가 센티멘트를 종목 매매에 활용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미국 단기국채의 선물 금리를 보면 내년 3월부터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이미 반영돼 있다"며 "측정 시점이 최근으로 올수록 기대 금리 수준은 더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증시가 반등한 건 이런 빠른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지난해 말처럼 시장 참가자들의 예측이 틀릴 경우 가파른 증시 조정이 뒤따라 올 수 있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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