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산업단지에 있는 중소기업 A사는 수년째 적자를 내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연중 가장 중요한 시기는 정부 과제를 잘 달성했는지를 심사받을 때다. 과제를 달성하지 못해도 ‘불성실 실패’가 아니라 ‘성실 실패’로 판정되면 다음 해에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재무 상태가 안 좋은 기업은 정부 보조금 수령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며 “평소에 심사관들한테 잘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B사는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총 97억원의 보조금을 타갔다. 그해 중기부 보조금 수령액 상위 네 번째였다. 당시 이 회사 영업적자는 52억원이었다. 적자는 2019년 80억원, 2020년 112억원, 2021년 201억원으로 불어났고 지난해에도 150억원에 달했다.
두 회사뿐 아니다. 2018년 중기부에서 지원받은 보조금 기준으로 상위 100개사의 영업이익을 추적해본 결과 뚜렷한 실적 개선은 없었다. 2018년엔 100곳 중 49곳이 적자였는데 2019년 55곳, 2020년 46곳, 2021년 53곳, 지난해 42곳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실적이 2018년보다 개선된 기업은 100개사 중 32곳에 불과했다. 이들 100개사가 2018년 받은 보조금 총액은 5327억원. 기업당 평균 53억원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70%가량은 실적이 더 나빠진 것이다.
100개사 내에서도 보조금을 적게 받은 기업의 실적이 오히려 나았다. 예컨대 보조금 수령액 상위 10개사는 2018년 평균 99억8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는데 2018년 대비 지난해 실적이 개선된 기업은 3개사에 그쳤다. 이에 비해 보조금 수령액 하위 10개사 중에선 7개사가 실적이 좋아졌다. 이들 10개사가 받은 보조금은 평균 37억원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문가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장우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정책연구실장이 2019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책금융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유사 기업보다 총자산 대비 영업이익률이 1.74%포인트 더 낮았다. 장 실장은 현 중소기업 지원 제도에 대해 “못하는 기업을 더 지원하고 산업 역동성을 떨어뜨리도록 설계돼 있다”며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보조금 지원이 나눠먹기식으로 흐를 뿐 아니라 지원 효과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경남 창원시에 있는 C사는 연구개발(R&D)을 위해 정부 보조금을 신청할 때 항상 연구 기간을 늘려 제출한다. 1년 만에 할 수 있어도 3년으로 신청하거나 연구원 5명이 필요해도 10명을 써 내면 지원 규모가 커진다. C사 대표는 “심사가 꼼꼼하지 않아 대부분 신청대로 통과되는 편”이라며 “성과가 안 좋아도 보조금을 회수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계기업을 장기간 지원하기보단 퇴로를 열어주고 폐업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부 지원금의 효율성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박한신/강경주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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