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V와 BEV 적절히 안배해야
지난해 자동차를 생산한 여러 나라 가운데 수출이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이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1월까지 441만대를 해외로 수출했다. 그 다음이 일본으로 399만대를 기록했는데 두 나라의 차이는 친환경차 비중이다. 중국이 수출한 자동차 가운데 109만대는 PHEV 및 BEV 등의 친환경차로 비중은 27%에 달한다. 반면 일본은 HEV 수출 비중이 높다. 이런 가운데 같은 기간 한국은 388만대를 국내에서 생산해 251만대를 해외로 내보냈다(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 11월 통계월보, 2023). 여기서 친환경차 비중은 66만대로 26%에 달하지만 HEV를 제외한 PHEV 및 BEV는 31만대로 절반 수준이다.
친환경차 수출 숫자는 중국이나 일본 대비 작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출 차종이다. 중국이 주력하는 BEV와 일본이 내세우는 HEV의 중간 지점에서 HEV와 BEV 수출을 골고루 늘렸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지금은 HEV와 BEV 모두 친환경으로 묶이지만 점차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선 HEV의 개념 정의를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HEV가 사용하는 전력 또한 결국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어 HEV를 친환경 목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반면 BEV의 확장이 더디고 소비자 또한 HEV 선호도가 높다는 점에서 HEV가 글로벌에서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진다. 유럽연합 내 일부 국가 또한 BEV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등 보급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HEV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 내에선 HEV와 PHEV의 탄소 배출량 절감 효과가 부풀려졌다며 갖가지 혜택을 줄이는 국가가 많다. 세금 감면을 없애거나 감가 상각 비용을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가 하면 과세 때 친환경차를 보유하고 있으면 소득세를 낮게 부과하는 조치도 자취를 감추는 중이다. HEV는 내연기관(ICE)의 연장선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런 흐름은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생산 방식에서 비롯됐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일부 유럽 국가는 HEV가 사용하는 전기를 문제 삼는다. HEV 전기가 100% 화석연료 엔진으로 만들어지는 탓이다. 물론 PHEV의 경우 플러그를 통해 외부 전원을 충전하면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일부 담을 수 있지만 전력이 소진되면 HEV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친환경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간 HEV와 BEV의 분류법이 플러그 충전 가능 여부였다면 이제는 사용하는 전기 생산 방식으로 나누자는 요구다.
유럽연합이 내세우는 논리는 명확하다. BEV 시장 및 산업적 보호 배경을 떠나 HEV, PHEV, BEV 등 어떤 자동차라도 구동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무엇으로 만드느냐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 위기가 심각해지는 시점에서 수송 부문의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때 사용되는 전기의 생산 방식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폭스바겐은 골프 디젤과 BEV를 전주기 관점(LCA, Life Cycle Assessment)으로 자체 비교한 결과 디젤은 ㎞당 140g, BEV는 119g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BEV는 전기에너지 생산 방식 및 배터리 생산 효율에 따라 디젤 대비 탄소 발자국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따라서 이제는 '친환경=고효율'이 아니라 '친환경=신재생전기에너지'로 개념이 달라질 태세다. 이런 점에서 특정 동력계에 치중하는 게 아닌 균형 있는 수출을 달성했다는 것은 한국의 강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할 때 2024년 또한 동력계의 복합 시대는 계속되기 마련이다. HEV가 득세하는 곳, 또는 BEV 성장이 가파른 곳이 존재할 수 있고 둘 모두 주목받는 시장도 생겨날 수 있다. 이른바 동력계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형국이다. 이럴수록 한국의 완성차 수출에는 청신호가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걸림돌은 역시 산업 보호주의다. HEV는 개방해도 BEV는 닫으려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어서다. 해결책은 현지 생산이지만 이 경우 국내 생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어 우려된다. 2024년에는 문제 해결이 가능한 뾰족한 돌파구를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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