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미술계에서 가장 눈에 띈 현상 중 하나는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서울’을 찾은 해외 ‘큰손’들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쓸어 담았고,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적인 미술관이 앞다퉈 한국 작가 전시를 열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K아트’의 주인공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한국 큐레이터의 몸값도 작가 못지않게 뛰었다. 올 4월 막을 올리는 세계 최대 미술 축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설치할 국가관을 한국인 큐레이터에 맡길 정도다. 하나도 아닌 두 개 나라가.
주인공은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미술관 관장(54·일본관)과 김해주 싱가포르아트뮤지엄(SAM) 선임큐레이터(43·싱가포르관)다. 올해 비엔날레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이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이 주제를 어떻게 전시에 풀어낼까. K아트의 선봉에 선 이들을 만났다.
그가 ‘한국 수출품’이 된 건 30여 년 전부터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적 미술관인 영국 테이트모던의 큐레이터가 됐고, 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체스터대 휘트워스미술관 관장을 맡았다. 이렇게 ‘최초’는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하나의 수식어가 됐다. 오랜 기간 낯선 땅에서 한국 미술을 알리고,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를 뚫은 그는 ‘이방인’이란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올해 주제(이방인)가 발표된 순간 ‘바로 내 얘기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선 이방인이란 주제와 함께 모리 유코가 다뤄온 기후위기 문제를 개인의 경험으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추상적인 얘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개인적 경험을 들려주는 게 더 재미있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번 비엔날레의 협업 파트너는 일본의 설치예술가 모리 유코다. 이 관장이 총괄감독을 맡았던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소설가 한강의 <흰>(2016)에 영감을 받아 흰 종이로 파도 모양을 만든 그 작가다. 이 관장은 “유코는 기술, 사운드, 키네틱 아트 등을 통해 거대한 인류의 문제를 보여주는 예술가”라며 “유코가 들려주려는 얘기를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친절한 전시로 꾸미겠다”고 했다.
홍콩에 이은 ‘제2의 아시아 미술 수도’를 놓고 서울과 다투고 있는 싱가포르도 국가관 전시 기획을 처음 한국인(김해주 큐레이터)에게 맡겼다.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부산비엔날레 감독을 거쳐 지난해 2월 싱가포르로 넘어간 직후 이런 부탁을 받았다. 싱가포르관 대표 작가인 로버트 자오 런휘가 그를 콕 찍었다고 한다.
“부산비엔날레 감독을 맡았을 때 도시의 역사, 지형, 환경을 미술 전시와 엮어내는 방식으로 기획했어요.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온 자오 런휘 작가가 저를 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장장 7년간 ‘2차림’(원시림이 아닌 인간의 간섭 등으로 인해 2차적으로 발달한 숲)을 주제로 연구한 작가거든요.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저도 작품에 나오는 숲을 직접 가보고 동식물을 연구했죠.”
김 큐레이터는 작가가 다루는 ‘2차림’이 비엔날레 주제인 ‘이방인’과 연결된다고 했다. “작가가 다루는 2차림은 ‘경계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밖에서 유입된 동식물 외래종 등 원래 있던 곳에서 밀려난 것들이 공존하죠.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경계의 존재’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큰 주제와 자오 런휘의 작품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주제를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영상매체와 설치작업으로 전시를 꾸미려고 합니다.”
그 역시 싱가포르에 사는 이방인이다. 그는 “해외에서 살다 보니 음식부터 미술까지 ‘지금껏 내가 알던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나’를 깨달았다”며 “작품을 문화적·사회적 맥락에서 잘 해석하고 전달하는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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