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선 인플레 공포가 되살아났다.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4% 오르며 시장 예상치(3.2%)보다 나쁘게 나왔다.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2.4%에서 12월 2.9%로 높아졌다. 미국과 유럽이 당분간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다.
국내에선 반도체·수출 경기가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 경기는 찬 바람이 쌩쌩 분다. 특히 고금리, 미분양 주택 적체, 공사비 급등으로 건설경기가 직격탄을 맞았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한숨 돌리긴 했지만 언제 어디서 건설사 부실이 터질지 모른다. 전임 정부 때 급증한 가계부채 여파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면서 가계 소비 여력도 위축돼 있다. 지난해 12월 승용차 내수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12% 급감하고 할인점 매출은 2.2% 줄었다. 기업들도 움츠려 있다. 작년 말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전국 30인 이상 204개사 대상 조사에서 82%가 올해 긴축 또는 현상 유지 방침을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 1000명 조사에선 7.5%만 올해 사업 전망을 긍정적으로 봤다. 그렇다고 마음껏 재정을 풀고 금리를 내릴 상황도 아니다. 물가를 부추기고 국가부채만 늘릴 수 있다. 국가부채는 이미 1100조원을 넘었다.
다른 주요국처럼 한국도 코로나19 때 풀린 과잉 유동성과 고물가 후유증을 치료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있다. 아직 터널을 다 빠져나온 게 아니다. 정치권이 눈앞의 인기에만 급급해 돈풀기 처방에 매달려선 안 된다.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고 구조개혁을 하는 게 물가안정과 경기 회복을 동시에 잡는 정공법이다. 당장 국회에 막혀 있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법안이나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 13년째 표류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민생법안부터 처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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