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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8987종의 가상자산이 존재하고 있다. 이 숫자는 계속 변한다. 매달 수십 개의 코인이 생겨나고 또 다른 수십 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장’은 항상 비트코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알트코인 중에는 한 번 폭락하면 투자자의 관심권에서 완전히 멀어져 좀비처럼 방치되는 것이 수두룩하다. 비트코인은 15년 동안 ‘내재가치가 없다’는 점잖은 비판부터 ‘데이터 쪼가리’라는 조롱까지 수많은 논란에 시달렸지만 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엘살바도르가 구상하는 자급자족 비트코인 도시, 우크라이나로 몰린 비트코인 후원금 행렬, 초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저개발국에서 비트코인 거래가 확대되는 모습 등과 같이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확신하는 열성 팬덤 역시 굳건하다. 마이애미를 비롯한 이른바 ‘가상자산 친화적 도시’에선 해마다 초대형 비트코인 축제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비트코이너’가 모여 강연을 듣고 파티를 즐기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국내 경제·금융권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SEC 결정에 대해 “비트코인은 확실히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 잡은 것 같고, 투자자산으로서 가치와 안정성을 시험해 볼 시기”라고 했다. 중앙은행 수장들이 가상자산의 가치 자체를 부정해 왔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반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은행 프라이빗뱅커(PB)에게 비트코인 투자 추천은 금기였다. 요새는 시장 상황에 따라 고객에게 매수를 권한다. 코인에 거부감이 없는 ‘젊은 부자’가 늘면서 PB도 달라졌다고 한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뉴욕 데뷔전은 성공적이었다. 11개 상품의 첫날 거래액은 총 46억달러(약 6조원). 올해에만 1000억달러가 유입될 것이란 예상(스탠다드차타드)까지 나온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강성 지지층’ 중에는 ETF 등장을 반기지 않는 쪽도 의외로 꽤 있다. 다른 코인은 관심 없고 비트코인에만 열광하는 사람을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라고 부른다. 이들은 탈중앙화를 생명으로 하는 비트코인의 정체성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블랙록 같은 월가 공룡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달러를 벌어가는 데도 반감이 크다. 해외의 한 맥시멀리스트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적었다.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처음 세상에 내놨을 때 이런 모습을 원했을까.”
나카모토의 정체가 아직 베일에 싸여 있기에 정답을 알 순 없지만, 아닐 것 같다. 그가 설계한 비트코인은 정부나 금융회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 거래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자화폐였다. 현실은 다르게 흘러왔다. 투자자는 더 많은 기관이 들어오길 원하고, 업계는 정부로부터 인정받길 갈망한다. 코인이 제도권 금융을 대신하기보다 제도권 금융이 코인을 흡수하는 모양새다. 이젠 재료가 소멸된 비트코인에서 다음 ETF 출시가 기대되는 이더리움으로 자금이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투기적 장면도 나카모토의 그림에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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