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배터리, 유전공학 등 첨단 미래 기술 확보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그동안 ‘한 수 아래’로 본 중국과 인도에 크게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전폭적인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혁파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지 않으면 격차가 한층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17일 입수한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글로벌 핵심기술 경쟁 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은 64개 첨단기술의 국가별 경쟁력 순위에서 단 하나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AI, 우주·항공, 배터리 등 53개 기술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은 자연어 처리, 유전공학, 양자컴퓨터 등 11개 기술 분야의 ‘최고수’로 꼽혔다.
호주 정부가 세운 국가 싱크탱크인 ASPI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전 세계에서 나온 64개 첨단기술 분야 논문 220만 편을 일일이 분석해 논문 인용 횟수와 학문적 영향력을 수치화하고, 관련 연구자들이 몸담은 직장 등을 조사해 종합적인 영향력을 ‘국가별 점유율’로 표시했다.
한국은 26개 기술에서 톱5에 들었지만, 점유율로 따지면 분야별 1·2위를 싹쓸이한 중국과 미국에 크게 뒤졌다. 한국의 대표 산업인 전기배터리 점유율은 3.8%로 중국(65.5%)과 미국(11.9%)에 크게 밀렸다. 한국이 5% 이상 점유율을 가진 분야는 △슈퍼 콘덴서(7.3%) △고급 무선주파수 통신(5.0%) △고성능 컴퓨터(6.3%) △지향성 에너지 기술(5.9%) 등 네 개뿐이었다. 인도는 19개 기술 분야에서 5%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눈앞의 성과에 쫓기는 정부 리더십 부재와 기업의 단기 투자 위주 전략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각종 규제와 반기업 정서도 ‘기술 강국’의 발목을 잡은 요소로 꼽힌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미국 등 전 세계가 첨단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는 모양새”라며 “기업들이 미래 기술 확보에 ‘올인’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지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우섭/황정수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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