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보니 교수, 전직 관료, 법조인 등 중립성을 무기로 삼은 특정 직군이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직업처럼 사외이사를 맡고 이들이 다시 후임을 밀어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자산순위 상위 30대 그룹 중 사외이사를 둔 220개 계열사의 사외이사 771명 이력을 분석한 결과 두 곳 이상의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람이 168명(21.7%)으로 집계됐다. 상법상 사외이사는 두 개 상장사까지 맡을 수 있다.
겸직 사외이사들은 교수가 73명(43.4%)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대(22명) 고려대(10명) 연세대(9명) KAIST(5명) 등 네 개 대학 교수가 46명이었다. 교수 다음으론 관료 출신이 55명(32.7%)으로 뒤를 이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사외이사의 겸직 비중이 더 높았다. 겸직 사외이사 168명 중 91명(54.1%)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5대 그룹 사외이사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현장 경험이 많은 현직 기업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싶지만 한국의 현실에선 하늘의 별 따기”라며 “교수, 법조인 중에서도 합리적인 성향의 후보는 대부분 특정 기업에 사외이사로 몸담고 있어 겸직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학회 소속 교수나 동문 등을 후임 사외이사로 밀어주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래야 본인도 다음 사외이사 자리를 찾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를 마치자마자 다른 기업 사외이사가 되는 ‘직업형 사외이사’도 많다. 이화여대 S교수는 20년 동안 회사를 옮겨 다니며 사외이사를 했다. 거친 기업만 두산중공업, LG유플러스, 포스코(현 포스코홀딩스), ㈜SK 등 다양했다. 서울대 A교수 역시 20년 가까이 사외이사를 지냈다. 최근엔 삼성증권과 메리츠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았다.
견제 기능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사외이사 보수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그룹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한 인사는 “보수가 연 1억원이 넘다 보니 자리 유지를 위해 경영진의 눈치를 본다”며 “보수를 확 낮춰 자리에 연연하지 않도록 해야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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