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2230여만 명이 해외로 나갔다. 코로나19로 제약받았던 해외여행의 욕구가 폭발한 결과일 것이다. 사진과 정보가 넘쳐나는 여행 관련 책과 판이하게 다른 <여행의 이유>는 여행 자체를 사유하게 하는 품격 있는 산문이다.
대개 작품 내용으로 작가의 지난날을 짐작하게 되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유명 작품을 읽어도 김영하 작가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의 이유>는 감각적인 작품으로, 마음을 깊숙이 찌르는 그의 일상과 본심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군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여섯 번이나 전학했다. 어릴 때부터 노마드의 삶에 익숙하던 그가 대학 시절부터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여행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이탈리아에서 3개월, 밴쿠버에서 1년, 뉴욕에서 2년 반을 보내고 귀국해 부산에서 3년 살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식이다.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인 삶을 사는 김영하 작가가 전하는 여행은 충분한 시간과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력을 뿜어낸다.
여행을 떠나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래 체류하며 글을 쓰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푸둥공항에서 바로 돌아와야 했던 작가는 선불로 송금한 숙박비와 식비도 환불받지 못했다. 중국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 자신의 불찰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이 상황에 대해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라고 정리한다. 그는 당시 대실패를 ‘추방과 멀미’라는 파트에서 단편소설처럼 의미 있게 풀어놓았다.
그는 여행기를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마치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그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라는 직업군의 삶과 ‘작가’의 마음을 느껴볼 기회를 안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을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프로그램’을 제일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과 관련 있다는 프로그램, 나의 프로그램은 뭔지 생각해보라. 작가는 낯선 곳에 도착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자신을 프로그램과 연결해 분석한다.
유명 작가인 그는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져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난다”고 고백한다. 키클롭스에서 위험을 자초한 오디세우스의 예를 들어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를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려고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환기한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감회와 불안을 떨치고 평온을 안기는 여행은 어떤 것인지, 사유하고 싶은 이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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