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7000억원을 내다 팔며 코스피 지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국내 증시 '맏형' 격인 국민연금이 연초부터 매도 규모를 키우면서 정부의 증시 활성화 대책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단기간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진 종목들은 담았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연기금은 지난 2일부터 전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723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가 3조3937억원, 개인 투자자가 2조9429억원을 순매수한 것과 대조된다.
매도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연기금의 영향에 지수도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난해 말 2655.28로 끝난 코스피 지수는 전날 2498.81로 5.8% 밀렸다. 주요 선진국 증시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다.
올 들어 연기금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다. 이 기간 2390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이어 현대모비스(965억원), SK이노베이션(913억원), SK하이닉스(745억원), POSCO홀딩스(699억원) 순으로 매도 규모가 컸다.
호텔신라(629억원), 롯데케미칼(543억원), 삼성SDI(514억원), 엔씨소프트(502억원), NAVER(473억원) 등도 매도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연기금은 국내 증시에서 단기간 낙폭이 컸던 종목들은 사들였다. 연기금은 이 기간 에코프로머티(1803억원)를 가장 많이 담았다. 에코프로머티는 연초 주가가 장중 24만4000원까지 올랐지만 현재 14만5100원으로 40.5% 급락했다.
카카오(1525억원, -12.2%), 포스코DX(818억원, -30.2%), 셀트리온(743억원, -25.4%), LG화학(671억원, -14.5%), 한화에어로스페이스(506억원, -11.7%), HMM(501억원, -6.4%) 등 외국인 또는 개인들의 매도세로 연초 이후 주가 하락폭이 컸던 종목도 연기금 매수 상위 종목에 포함됐다.
국민연금 운용 현황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민연금 전체 자산 가운데 국내주식의 비중은 14.1%로, 기금운용위원회가 내세운 지난해 말 목표치 15.9%와 올해 목표치 15.4%를 크게 밑돌았다. 규정 때문에 파는 게 아니라는 여력이 있음에도 안 산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중기자산 배분 계획'에 따라 향후 5년간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 주식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해외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민의 노후자산이다보니 수익률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리스크 분산과 투자 기회 확대 차원에서 세운 전략이다.
다만 최근 정부의 증시 활성화 대책과 주가 부양 노력에 국민연금이 '순매도 포지션'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국내 증시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의 심리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증시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연기금의 순매도세"라며 "연기금이 2020년 6월부터 3년 반 이상 39조원에 육박하는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매물 출회 가능성이 낮은 업종들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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