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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설립된 일본 아지모토도 정체성이 모호한 기업 중 하나다. 일본어로 ‘맛의 본질’이라는 뜻의 아지모토는 인공조미료 MSG를 개발한 세계 최대 조미료 회사다. 최근엔 반도체 핵심 소재인 절연필름(ABF)으로 더 유명해졌다. 자체 개발한 ABF로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우리나라엔 이런 카멜레온 같은 회사가 많지 않다. 산업의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자체 변신보다는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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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오리온을 두고 “초코파이로 돈 벌어 제약사업으로 날리는 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작년 말 HMM 인수전이 한창일 때 하림과 동원의 싸움을 ‘치킨과 참치의 대결’이라고 조롱하던 수준을 떠올리게 한다.
시장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M&A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경계심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고가 베팅’ 논란이 나오기도 한다. SK가 하이닉스를, 삼성이 하만을,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각각 인수할 때도 그랬다. 인수금액에는 시장의 평가뿐만 아니라 기업가의 강력한 의지도 반영된다. 주가는 오늘의 평가일 뿐, 내일의 희망과 성장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런 도전과 기업가정신을 바로 계량화하지 못한다. 오리온이 인수한 레고켐바이오는 보유한 후보물질의 가치가 1조8000억원이다. 신약 성공 확률을 7%로 계산하면 최소 1000억원 이상 가치를 지닌 미래 자산이다. 게다가 오리온은 1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자금 조달에도 문제가 없다. 하루아침에 기업가치 수천억원이 날아간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경영은 언제나 위험을 끌어안는 ‘리스크 테이킹’의 과정이다. 사업 영역이 달라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교집합이 없을수록 협업 효과는 배가 된다. 혁신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테슬라가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를 설계한 것도, 삼성이 바이오산업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존 방식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종목이 아닌 분야에서 깜짝 놀랄 혁신을 만들어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해외에선 이종산업 간 인수합병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에스티로더와 아마존은 지난해 수조원을 들여 바이오 회사를 인수했다. 포드도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사에 지분을 투자해 자동차 부품을 공동 개발한다.
글로벌 시장에선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한데, 우리 기업들에만 기존에 하던 것만 잘하라고 말할 순 없다. 과자 사먹을 아이들은 갈수록 줄고 내수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상황 아닌가. 현대 산업사는 끊임없이 도전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최장수 기업이 된 머크가 2002년 펴낸 사사(社史)의 제목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Was der Mensch thun kann)’이다. 머크를 글로벌 생명공학기업으로 키운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가 한 말이다.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것은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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