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처음 칼을 겨눈 건 2016년 11월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가 발단이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총 565일간 ‘영어의 몸’이 됐다. ‘선장’을 잃은 삼성은 특유의 ‘야성’을 잃었고,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했다. 그사이 애플 구글 등 빅테크는 물론 TSMC 엔비디아 등 반도체업체들은 저만치 앞서 나갔고,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은 TV 스마트폰 반도체 등 모든 분야에서 삼성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삼성 사람들이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래서 경제계에선 사법 리스크 족쇄를 벗은 이 회장의 첫 번째 숙제로 ‘강한 삼성’ 복원을 꼽는다. 바이오, 차세대 이동통신 같은 ‘JY표 신사업’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벌어진 인공지능(AI) 기술 격차도 단시일 내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가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30년 연속 세계 1위’를 지킨 메모리반도체에선 경쟁사에 거의 따라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은 38.9%, SK하이닉스는 34.3%로 격차는 4.6%포인트다. 2013년 2분기(2.7%포인트) 후 최저 격차다.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출하량 기준’ 세계 1위 자리를 애플(점유율 20.1%)에 빼앗겼다. 접을 수 있는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선 중국 BOE에 지난해 4분기 기준 1위 자리를 내줬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주력 사업의 경쟁력 복원을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운드리에선 세계 1위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시장점유율은 TSMC 57.9%, 삼성전자 12.4%로 45%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첨단 공정 개발 때마다 불거지는 낮은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 비율) 논란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1등이란 구호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고객을 확보해 내실을 다지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 등 이 회장이 공들인 시장에서 5G(5세대) 통신장비 수주 계약이 끊어지면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기타기업’으로 분류될 정도로 낮아졌다.
이 회장이 대형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삼성전자의 대형 M&A는 2017년 전장(자동차 전자장치)·스피커 전문 업체 하만을 약 9조원에 인수한 게 마지막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1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3년 내 M&A를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현재까지 결과를 못 내고 있다. 줄어들고 있는 순현금(2022년 말 104조8900억원→2023년 말 79조6900억원)과 50조원 규모 시설투자액을 감안할 때 당장 초대형 M&A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글=황정수·최예린/사진=최혁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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