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은 안돼"…'개인 투기판'으로 방치된 韓가상자산 시장 [한경 코알라]

입력 2024-02-07 11:15   수정 2024-02-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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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에는 '전문 투자자 제도'라는 것이 있다. 전문성과 소유 자산 규모가 일정 이상인 개인이나 법인을 금융투자회사가 심사하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전문 투자자로 인정되면 일반 투자자에게 거래가 금지된 투자상품을 거래할 수 있고, 투자금액 제한, 사전 교육이나 모의 거래 등이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거나 구조가 복잡해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큰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아마추어 투자자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차단한 것이다. 정부와 업계가 상품의 성능과 위험성을 미리 파악하고 비전문가의 경우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용하게 하여 불의의 사고를 막는 이용자 보호조치의 일환이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용자 보호는?
가상자산 시장은 주식시장과 다르게 24시간 365일 거래가 이루어지며, 상한가와 하한가도 없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백% 상승도, 99% 하락도 가능한 곳이 가상자산 시장이다. 즉, 빠른 자산 증식의 가능성도, 소위 '폭망'의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 가상자산 시장이다.

가상자산 시장에는 기존 자본시장보다 더 엄격한 제한 또는 차단이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자본시장에서는 큰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는 차액결제거래(CFD) 등 고위험 상품의 경우 전문투자자 자격이 승인된 개인 또는 법인만 거래에 참여할 수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우 개인은 자유롭게 거래에 참여할 수 있으나 해당 개인의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 소유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지 않는다. 전문 투자자 역할을 수행할 법인의 거래는 원천 차단돼 있다.

일본의 경우, 금융청과 거래소 자율규제기구인 JVCEA의 화이트리스트 심사를 통과한 소수의 자산에 대해서만 투자가 허용돼 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 제도화에 급물살을 타고 있는 홍콩도 일본처럼 화이트리스트 자산에만 개인 투자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수많은 부실 자산들이 거래소 재량에 따라 상장되고, 급등락을 보인 후, 상장 폐지돼 사라졌다. 가상자산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능력이 부족한 개미 투자자들이 많은 돈을 잃었다.
전문 투자법인이 제외된 시장의 부작용
제도의 모순은 부작용을 낳는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전문 투자법인들이 제외돼 있어 개미 투자자보다 나은 정보 해석 능력과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전문가들이 수행해야 할 '정보 거래자(Informed Trader)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

2021년 특금법 시행 시점부터 법인의 가상자산 원화마켓 이용이 공식적으로 차단됐지만, 실제로는 2017년 금융위원회가 '제도권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신규 투자가 투기 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가상자산 보유·매입·담보 취득·지분투자를 금지'했을 때부터 일선 투자사들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 진입을 포기했다.

몇 번의 강세장이 발생하면서 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감정적 투기 성향의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에 더 많이 유입되었고 그 결과 '가즈아', '약속의 9시', '상장빔', '유의빔', '가두리빔', '순환펌핑' 등의 재미 위주 투기 현상이 점점 더 심화했다.

아마추어 개인 투자자의 투기가 가격과 거래량을 주도하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이미 글로벌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한국 시장을 노리고 단기 유행(이를 업계에서는 '메타'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노린 프로젝트들이 국내외에서 출시되고 국내 거래소에 상장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유행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유행이 지난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잃고 매우 빠르게 추락한다. 추락 후에는 사업 주체 변경, 소송전, 의심스러운 해킹 사건, 투자자 항의, 사업 좌초 등 여러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다. 손실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의 중요성
전문 투자법인이 금융시장에서 수행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시장조성(Market Making) 기능이다. 유동성?개선이?필요한?종목과?신규상장종목에 대해 한국거래소(KRX)와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지속해서 매도·매수?호가를?제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거래소가 아닌 상장회사와 증권사가 계약을 맺고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유동성공급자(LP·Liquidity Provider) 제도라고 부르며, 이 또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장조성자 제도와 유동성공급자 제도 모두 이상 급등락 현상과 그에 따른 시장 혼란을 방지하고 상장종목에 대한 올바른 가격발견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에도 ETF 시장조성자(MM-BD)와 비트코인 시장조성자(MM-crypto)가 정식으로 등록돼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법인 참여가 차단됐기에 증권시장과 같은 정식 시장조성자 또는 유동성공급자의 시장 참여가 불가능하다. 일부 개인이 시장조성자를 자칭하며 활동하는 정황이 예전부터 포착되어 왔지만, 이들은 절차를 통해 자격을 인정받거나 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 이들이 아니다. 만약 법인 소유의 자금 또는 가상자산을 개인이 거래소에서 운용하는 경우 차명계좌 이슈 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또한 이 중 많은 이들이 이상 급등락 현상의 주체로 지목되어 왔고, 일부는 현재 남부지검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일부 종목은 거래량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일부 종목은 이상 급등락이 발생하며 시장의 혼란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외신에서도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이상 과열 현상을 자주 보도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입장은 '투기 심리를 자극하지 않겠다'라는 2017년 입장과 동일하다. 지난 1월 중순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막아서며 '기존 정부입장'에 위배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 재산이 한 번에 몇 배가 될 수도, 0이 될 수도 있는 가상자산 시장에는 현재 올바른 가격발견 기능을 할 전문 투자자도, 급등락을 완화할 시장조성자도 없다. 지금도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가격 등락을 주도하는 것은 '가즈아'를 외치는 개미 투자자들과 그들을 선동하는 '리딩방' 업자들이다. 투기와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가 투기와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가상자산 1단계 입법이라 불리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올해 7월 시행된다. 진정한 이용자 보호가 무엇인지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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