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은행이 투자자의 손실을 얼마나 분담할지 정한 배상안을 이달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안과 별개로 은행이 ‘자율배상’에 나서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사태 수습 방식을 놓고 경제학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배상 압박이 실제 불완전판매 피해자와 단순 투자 실패자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 가장 크게 우려한 부분은 정부가 홍콩H지수 ELS 손실 배상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직접 홍콩 ELS 배상안을 만들면 신속한 피해 구제가 가능하겠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편향된 기준을 마련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완전판매라면 (투자자가) 위험을 인지하고 투자했기 때문에 (은행이) 배상할 이유가 없고, 불완전판매라면 감독 소홀의 문제가 있는 정부가 스스로 공정한 배상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에 의혹이 있을 수 있다”며 부적절하다는 뜻을 표했다.
이에 일부 교수는 배상 기준을 마련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법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교수는 “정부의 배상안이 정치적인 시각에서 결정될 수 있으므로 불완전판매로 손실을 본 사람들이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전주용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개별 은행과 소비자가 민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32.6%(15명)의 응답자는 정부가 직접 배상안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ELS 투자 손실이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배상 기준을 정부가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의 52.2%(24명)는 ‘은행이 자율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정부 지침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은행의 자율배상은 일관된 기준이 없어 부적절하다”고 했다.
반면 자율배상 지침이 적절하다고 보는 교수들은 불완전판매 행위의 책임이 은행에 있는 점,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기영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의 불완전판매 혐의가 확정된다면 직접적으로 연관된 투자 손실금을 배상할 책임이 응당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를 계기로 은행에서의 ELS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설문 응답자의 69.6%(32명)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잘못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예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정책은 시장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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