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여간 D램시장 관전법은 단순했다. ‘선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세 곳뿐. ‘누가 잘하느냐’는 생산 규모와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 비율)로 결정됐다.
‘게임의 법칙’이 바뀐 건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에 특화한 대용량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공급사 입맛대로 찍어내는 일반 D램과 달리 HBM을 제작할 땐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다. 고객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차세대 HBM엔 추가 기능을 넣을 수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까지 필요해졌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다 하는 삼성전자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메모리만 잘하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파운드리 전문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향후 D램시장의 경쟁 구도가 ‘삼성 vs SK+파운드리 A사 vs 마이크론+파운드리 B사’ 구도로 바뀐다는 얘기다.
먼저 승부수를 띄운 건 삼성전자다. 메모리사업부, 파운드리사업부, AVP(최첨단패키징)사업팀 등의 반도체(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조직의 역량을 총 결집해 최고 성능의 HBM4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HBM4 승부처인 로직다이 제작은 파운드리사업부가 맡는다. 최근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의 특별 지시로 꾸린 ‘HBM 원팀 태스크포스(TF)’의 주요 미션도 HBM4 경쟁력 강화다. TF는 로직다이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파운드리 공정의 선폭(회로 폭)을 좁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며 “제품 개발과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짧은 만큼 고객사 요구에 가장 빨리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선 내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경쟁 구도가 ‘삼성 vs 비(非)삼성 연합군’으로 나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SK 연합군, 마이크론 연합군 중 패퇴한 쪽은 시장의 마이너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정수/김채연/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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