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주식을 팔기만 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 들어 전방위적으로 'K-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해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 전날까지 12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6866억원어치를 샀다. 이는 외국인이 월간 역대 최대 순매수를 기록한 2013년 9월(7조8263억원)보다 빠른 수준이다. 당시 외국인은 12거래일간 3조7464억원어치를 순매수해 그 규모가 이달의 절반 수준 밖에 안 됐다.
범위를 지난달까지 넓히면 규모가 더 커진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4828억원을 순매수했다. 지난달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을 계속 팔아치우던 외국인은 지난달 24일 정부의 정책 발표 예고를 기점으로 매수 주문을 강하게 넣어 순매수로 돌려세웠다. 외국인은 지난달 말 밸류업 정책 예고 이후 전날까지 7조8064억원을 순매수한 셈이다.
매매전략도 종목보다는 지수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뿐만 아니라 코스피200 선물도 4조842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지난달에도 코스피200 선물을 4조9748억원 담았다. 당분간 전체 지수의 상승을 강하게 점친다는 의미다. 통상은 코스닥을 팔아 코스피에 투자하면서 전반적인 위험도를 낮추지만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닥에서도 2117억원을 순매수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달 들어 외국인 순매수가 약 6조원을 넘어서며 증시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에 저평가 종목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 기술·성장주까지 담은 것으로 보면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이달 들어 전날까지 가장 많이 산 종목은 현대차(1조5352억원), SK하이닉스(6403억원), 삼성물산(4628억원), 삼성전자우(3941억원), 기아(3796억원), 삼성전자(3223억원), KB금융(2245억원), 하나금융지주(1926억원), SK스퀘어(1619억원), KT(1296억원) 순이다. 자동차·은행·보험 등 최근 증시에서 저PBR 수혜주로 꼽혔던 업종이 주를 이뤘다.
반대로 외국인이 이달 들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NAVER(1763억원), LG화학(1382억원), 삼성SDI(1010억원), 두산로보틱스(913억원), LG생활건강(782억원), 포스코퓨처엠(442억원), 현대미포조선(438억원), 오리온(387억원), 삼성에스디에스(271억원), HL만도(248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2차전지, 내수주 등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올라 고평가 논란이 나왔던 종목들이다.
이달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지는 다음주 발표하는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공개된 방안은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공시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 있다. 강제 수단은 아니나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지수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말 정부의 정책 예고 발표 이후 강한 매수세가 들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PBR 요인이 강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실제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내용에 따라 이익을 실현하고 나가는 매물도 나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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