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류장은 지중미술관이에요.”
지난달 19일 일본 나오시마에서 올라탄 순환버스. 60대 버스기사는 일본어 안내를 마친 뒤 한국어로 내릴 정류장을 안내했다. 영어와 스페인어 안내가 이어졌다. 버스기사는 “7개 국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만큼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라는 방증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울창한 숲에 이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미술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지만 천장 일부를 뚫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이 미술관에는 ‘인상주의의 아버지’ 모네의 수련 연작과 현대미술의 거장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이 걸려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같은 ‘예술 성지 순례’ 장소가 형성된 배경과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하지만 후쿠다케는 뚝심 있게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1992년 호텔 겸 미술관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이 들어서고, 리처드 롱 등 현대미술 거장들이 이곳에서 나오시마만을 위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자 서서히 관람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양 미술 거장들의 지중미술관(2004년), 이우환의 이우환미술관(2010년), 쿠사마 야요이 등의 밸리갤러리(2022년)가 차례로 들어서며 섬을 찾는 이는 더 늘었다.
이 과정에서 돋보인 건 후쿠다케의 안목이다. 먼저 작품. ‘수련’ 등 초고가의 명작도 돋보이지만, 모든 작품이 다 비싼 건 아니다. 예컨대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쿠사마의 설치 작품 ‘호박’은 현재 수십억원대를 호가하지만, 1994년 첫 설치 당시만 해도 수천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미술관의 전체적인 구성도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다. 예컨대 가장 고지대의 지중미술관에서 서양미술과 ‘빛’의 관계를 본 관객들은 언덕길을 내려와 이우환미술관에서 서양에 대응하는 동양적인 철학과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우환의 철판과 돌은 번잡한 도심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미술관 겸 호텔인 베네세하우스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다. 기자가 묵은 방의 너비 및 집기와 청소 상태, 식사는 비슷한 가격대의 서울 호텔(1박 약 38만원)과 레스토랑(저녁 코스 약 9만5000원) 못지않았다.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 밤 11시까지 여유 있게 미술관을 돌아볼 수 있다는 특전(일반 관람객은 4시까지)을 감안하면 체감 가치는 더욱 높았다.
쇠락하던 마을의 빈집과 공터를 미술 전시장으로 바꾼 ‘이에(家) 프로젝트’는 ‘걷는 재미’와 ‘동네 구경하는 재미’를 더한다. 관람객들은 마을 곳곳에 숨은 전시장과 함께 일본 섬마을의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가도야’는 지은 지 230년 된 집으로, 주민에게 기증받았다. 섬에 함께 들어간 한국인 단체관광객은 집 안에 설치된 미야지마 다쓰오의 LED 설치작품 ‘시간의 바다’를 보며 “멋지다”는 탄성을 질렀다.
이렇듯 나오시마에 있는 작품 대부분은 ‘장소 특정적 미술’이다. 작가들이 나오시마를 찾아와 현지를 살펴보고, 풍광과 주변 환경에 최적화된 작품을 새로 만들어 설치했다는 얘기다. 나오시마에서만 볼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과 건물, 여기에 어우러진 자연과 전통, 이 모든 걸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 나오시마를 방문한 3명 중 2명(67.1%)이 다시 오고 싶다(2021년 오카야마대 연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외지인이 몰려오는 건 주민으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베네세홀딩스는 ‘점령군’이 아니라 ‘한 팀’이 되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나오시마 프로젝트 시작 이후 10년간 연 설명회만 해도 수없이 많고, 관련 사업에도 지역 주민을 적극 고용했다. 그 덕분에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관광객에게 도슨트 역할을 하고 거리를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섬에는 젊은 층 인구가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인구 약 3000명인 이 마을로 이주한 사람은 지난 5년간 500여 명. 대부분 30~40대 부부 가구이고, 20대 1인 가구도 적지 않다. 베네세홀딩스 관계자는 “기존 주민과 이주민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나오시마=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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