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를 나흘 앞둔 지난 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을 급히 불렀다.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으로 가면 어떻습니까”. 배경 현수막인 ‘백드롭’에 담긴 슬로건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당초 참모들이 올린 초안은 ‘산업의 쌀, 민생반도체’였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는 소수 기업이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를 먹여 살린다”며 슬로건 교체를 주문했다고 한다. 다음날 윤 대통령은 행사에서 “반도체는 그 어떤 산업보다도 우리 민생을 풍요롭게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통령 생각이 슬로건에 담긴 것”이라고 했다.
백드롭은 원래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에 설치된 뒷배경을 뜻한다. 몇전부터는 정당 회의실이나 행사장 등 정치권에서 적극 쓰이기 시작했다. 백드롭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 등을 전하는 일이 잦다 보니 ‘말 없는 대변인’으로 불린다.
대통령실도 지금까지 총 15차례 민생토론회를 열면서 백드롭을 적극 활용했다. 전체적인 컨셉은 대통령실 홍보기획관실이 총괄하고 세부안은 각 부처 직원과 부처와 계약을 맺은 홍보기획사 등이 협업해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생토론회 백드롭은 그동안 행사 주제에 맞게 색상과 문구, 이미지 등이 배치됐다. 지난달 1일 ‘의료개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백드롭 배경색으로 초록색과 하늘색을 썼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병원 바이털 사인 모니터에서 착안한 색상이다. 배경에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어린이 환자와 손가락 약속을 하는 사진이 차용했다.
지난달 1월 금융과 증권시장을 다룬 4차 민생토론회에서는 상승장을 의미하는 붉은색이 배경색으로 사용됐다. 같은달 ‘교통 격차 해소’를 주제로 열린 6차 민생토론회에서는 분홍색 배경의 백드롭이 등장했다. 출퇴근 걱정에서 벗어난 시민들이 맞이하게 될 ‘핑크빛 미래’를 표현했다고 한다.
행사 장소를 백드롭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27일 충남 서산 민생토론회는 배경에 ‘백제 와당’ 무늬를 착안한 이미지가 담겼다. 색은 백제를 상징하는 황색이 쓰였다. 지난달 22일 원전을 주제로 경남 창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선 지역 산업단지와 원자력발전소를 배경 이미지로 썼다. 원전 이미지 아래에 도시 그림자 모습을 넣어 원정 생태계 복원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이번 민생토론회서도 윤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슬로건이 대여섯개에 이른다고 한다. 백드롭 슬로건, 행사 제목 등이 민생토론회 전날 결정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이 윤 대통령이 직접 고친 슬로건 중 하나다. 당초 실무진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산업 허브 울산’를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13일 부산 민생토론회도 당초 슬로건이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였지만 윤 대통령 지시로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방문 현장을 중심에 두고 지역 현안을 위주로 토론회를 기획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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