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기준 공시보고서, 컨퍼런스콜 등 상장사 문서에서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 관련 언급 빈도는 16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2월 193건 대비 86.5%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남은 기간이 보름여임을 고려하면 300건이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 사항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꼽았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총 시즌 내 국내 기업들의 주주환원 검토 빈도는 작년 3월에 역대급으로 높았고, 올해 주총은 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며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주주환원 정책이 이번 주총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예고한 은행, 자동차, 지주사 주총에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에 노출된 증권사는 배당 불확실성이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저평가 상장사를 중심으로 주주총회에 주주제안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기관 투자자보다 개인 투자자들이 주주환원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도 과거처럼 무조건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수가 대폭 늘고 있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글로벌 기업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주주제안을 받은 국내 상장사는 77개사였다. 2020년 10개사 대비 7.7배 늘었다. 상법상 배당 결정 등 주주제안은 정기 주총일 2주 전까지도 가능하다.
행동주의 펀드는 단순한 투자보다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의 방식을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이고 있다. 매년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기업에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물산도 연합 행동주의 펀드가 제안한 자사주 매입 및 배당 증액을 오는 15일 주주총회에 안건으로 올린 상황이다.
노동길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는 주로 은행주에 배당 확대를 제안했다. 그러나 올해 은행이 앞서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개별 기업에 대한 주주제안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정확한 수치를 예상하긴 어렵지만 주주제안수 자체가 작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주총에선 소액주주들의 입김이 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소액주주 플랫폼인 액트와 헤이홀더에 올라와 있는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은 2022년 11건, 2023년 18건으로 증가하다가 올해 20건이 제출됐다.
소액주주들은 주식 총수의 지분 3%를 소유하거나,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만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지분이 많은 편인 이른바 '슈퍼 개미'를 중심으로 모이지 않으면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플랫폼을 통해 주주인증, 전자 위임이 간편해지면서 결집이 가능해지며 세를 불리고 있다.
실제로 다올투자증권 최대 주주 이병철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2대주주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는 지난달 27일 소액주주 플랫폼 비사이드코리아에서 전자 위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회사 정상화 전까지 최대주주와 함께 배당을 받지 않겠다며 소액주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이 회사의 소액주주 지분율은 약 62% 수준이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은 "소액주주들의 영향력 확대는 당연한 흐름이고, 정부 밸류업 정책 이후 그 추세가 더 강해질 것으로 판단한다. 또 과거와 달리 각종 플랫폼이 나오면서 주주들이 의견을 모으기도 쉬워졌다"며 "개별 기업들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주총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전보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따라 기업들도 주주환원에 우호적인 입장이다. 여기에 소액주주 운동도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거버넌스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다만 배당금을 통한 '현금 빼 오기' 혹은 초단기 주가 상승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중장기적인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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