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시대 가속화와 함께 첨단기술 유출도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전개되지만 마땅히 처벌할 법 조항조차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국내 항공·무기 기술의 집약체인 KF-21 관련 기술을 유출하려던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에게 수사기관은 간첩죄가 아니라 방산기술보호법 적용 여부를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한 달 전에는 중국의 비밀경찰서라는 의혹을 받은 서울 소재 중식당 실소유주(중국인)가 기껏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미국은 국가전략기술 유출이 적발되면 간첩죄 수준으로 단죄한다. 1년여 전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기술을 탈취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에 20년 중형을 선고했다. 입법 강화 추세도 뚜렷하다. 영국은 작년 말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간첩범죄’를 3가지로 규정하고 보호대상 정보 유출에 ‘최대 종신형, 상한 없는 벌금 부과’를 명문화했다. 대만도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첨단산업 기술 유출을 ‘간첩행위’로 명시했다. 한국에선 입법 미비의 틈새를 파고든 기술 탈취가 뚜렷한 증가세다. 2019년 14건이던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지난해 23건으로 늘었다. 유출 기술 3건 중 1건이 정부가 지정·관리하는 국가핵심기술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련 범죄자들은 여전히 집행유예나 1~2년 단기 실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핵심은 간첩 행위의 대상을 ‘적국’으로 한정한 ‘형법 98조 1항’ 수정이다. 국가기밀을 유출해도 적국이 아니면 처벌할 수 없는 문제조항임에도 야당과 대법원은 수정에 소극적이다. 냉전 시대인 1953년에 만들어진 조항을 그대로 두자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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